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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Dec 23. 2022

관능의 물레질, 속지 마세요

 야리꾸리한 영화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띄었다. 포스터에는 후광 속 남녀 주인공의 야릇한 실루엣만 가득하다.

 어젯밤 서울의 한 극장에서 문제의 영화가 심야상영 중 또 정전이 되었단다. 관객들은 영화가 중단되어 교통비를 받고 귀가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저 영화를 날마다 뉴스에서 이야기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지.

 1990년 겨울. 나는 마지막 중학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 The Ghost.

 나는 정확하게 언제 영화를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등학교 몇 학년? 미불이었어도 아마 철 지난 영화를 묶어서 상영해 주는 동명극장에서 봤을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두 주인공의 물레질 장면을 기억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약간의 소리를 내며 윙~하고 물레가 돈다. 물을 흠뻑 먹은 흙 덩어리가 물레판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쉼 없이 돌아간다. 손을 살짝 대었더니, 부드럽지만 미끄러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두 손으로 살짝 감싸 안으니, 그 안에서 춤을 춘다.

 어쩌면 도자기 작업 중에서 손의 감각을 최대로 느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시절,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100개는 가능했다

 나는 물레성형을 경건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학생들은 힘이 없어서 물레를 차기 전에 꼭 밥을 먹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다리를 벌리고, 오른쪽 팔꿈치를 아랫배에 갖다 붙인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물레를 오른발로 페달을 밟아 속도조절한다.

 (무릎이 아파서 한의원에 갔더니, 운전을 오래 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엑셀 밟는 것과 비슷하다)

 한 번에 물레 중심을 잡는 건 능력자들 이야기이고, 몇 번에 걸쳐 올렸다내렸다 반복하며 흙의 중심을 맞춘다. 의도치 않게 힘조절에 실패하면 흙덩어리 윗부분이 마치 목이 날아가는 상황이 되는데, 누구나 처음에 경험하는 일이다. 난감해할 필요 없다.

 

 아쉽게도 나는 짧고 굵은 손가락을 가졌다.

 중지를 이용해서 물레중심을 뚫고 형태를 만드는데, 아무래도 손가락이 길면 좀 더 넓고 큰 형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신체적 결함은 문제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흙이 회전한다. 내가 힘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한다.

 흙이 주는 질감은 상상이상이다. 한 번 물레에 빠지면, 그 손맛을 잊지 못한다.

 물레는 한 번도 안차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차본 사람은 없을 만큼 매력적인 작업이다.


 분명 '사랑과 영혼' 감독님께서는 물레를 차 본 분이시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겠는가?

사실, 뒷 쪽에 건조대가 더 마음에 든다

 영화 덕분인지, 91년 MBC에서 '산 너머 저쪽'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여주인공은 김희애 배우님인데, 처음으로 의사, 변호사가 아닌 도예가가 등장한 것이다.

 막 그림을 시작한 나에게 저런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꿈을 꾸게 했다. 나중에 서울로 대학을 가면 꼭 한번 H대 앞 E대 출신 작업실 HUHU공방을 찾아가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나와 같은 이들은 또 있었으니, 92년 도예과 경쟁률은 사상최고점을 기록했다. 갑자기 인기학과가 된 것이다.

 나는 수능 1세대로 당시 샤프심 경쟁률이라고 선배들에게 핀잔을 들었는데, 92학번은 나름 최고경쟁률이라면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흥, 그래도, 지금 잘 나가는 오빠들은 다 94학번이다.


 나는 데미 무어이기도 김희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절대 그녀들 때문에 도예가가 된 건 아니다.

 믿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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