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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Dec 16. 2022

달아 높이곰 돋아사

달항아리

 나는 국어를 잘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담임도 가장 의아해했던 부분이다.

 글짓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요. 언변이 나쁜 것도 아니요. 고전을 잘 못 외우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언어영역 점수는 뒤에서 몇 번째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더 놀라운 건, 영어는 앞에서 몇 번째란 사실이다. 나에게 국어와 영어는 전혀 연관성 없는 과목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국어를 싫어하지 않았다. 국어공부를 안 했을 뿐이지.


 시절에 외웠던 구절들이 문득 떠오를 때면, 나 혼자만 그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국어를 못했던 이유는 내 마음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실제 고전의 의미는 내가 느끼는 것과 사뭇 달랐으니까.


 '달아 높이곰 돋아사'

 이 절절한 구절을 나는 뭔가 해내고 싶은 결의로 느낀다. 토끼띠라 그런가.


 달이 먼저인지 항아리가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도자기에도 달과 관련된 멋진 작품이 있다.

 바로 '달항아리'이다.

 이 주제는 학교를 막론하고 매년 졸업전시회에 등장하는데,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정복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달항아리는 '업다지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쉽게 말해, 커다란 대접 두 개를 결합시켜 하나로 만든 것이다.

 다른 흙이었으면 커다란 항아리를 한 번에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기술 좋은 물레대장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반합의 공식처럼 나누어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사실 백자토는 꼬시기 쉽지 않은 연애 상대다. 흙이 가진 성질이 여간 깐깐한 게 아니다. 단단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 물레성형을 할 때, 수분조절에 실패하면 영락없이 처져 이내 형태가 망가져 버린다.

 하지만 의외로 살살 다독이고 조심스럽게 다루어 주면, 그 어떤 흙보다도 꼿꼿한 자태를 보여준다.


 형태를 맞추고 수분을 조절하고, 붙인 부분을 예쁘게 다듬고, 아마도 여러 날 공을 들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한 번에 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거리를 두고 천천히, 조바심 내지 않고 커다랗고 원대한 꿈을 이뤄나갔을 것이다.

언젠가 나를 넘어설, 녹록지 않은 후배 딸이다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달항아리를 이해했다. 물레를 사용하기보다는 코일링을 하는데, 무엇보다 팀웍이 중요하다.

1. 높이와 지름의 크기를 정해놓고, 각자 반 구를 하나씩 만든다.

2. (물레성형 대신) 코일을 길게 밀어 하나씩 올린다.

3. 반 구가 완성되면 조금 굳혔다가 두 개를 결합시킨다.

4. 주구를 뚫고, 안과 밖이 모양을 이룰 수 있도록 정리한다.


 초반에 코일을 올리는 단순한 작업이 지속되면, 아이들은 금세 지루해한다. 하지만, 두 개를 결합하는 순간, 새로운 형태감을 느끼게 된다. 커다란 공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흙공을 두드린다. 둥둥~소리가 난다. 주구를 뚫는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안쪽 공기가 새어 나오니, 아이들도 새어 나오는 공기처럼 피식~하고 웃는다.

 항아리 안으로 손을 넣어가면서 형태를 잡는다. 손을 넣었다뺐다 신났다 아주.


 어느 순간 그들이 왜 항아리를 만들었는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흙과 물, 그리고 달과 나. 그 안에 '호흡'이 있다.


 이번에도 나 혼자만의 해석이다.

 정답이 아니어도 좋다.

 백점인들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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