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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Feb 03. 2023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나는 성북구에 산다.

 대관령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강 근처에 사는 것보다 산 아래 사는 것이 익숙하다.

 그래서 한강을 건너는 일이 극히 드문데, 방학특강을 하는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덕분에 내가 서울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오늘도 출근대열에 맞춰 강변북로를 달린다. 서울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

롯데타워 옆 일출이 장관이다

 "너희들은 몇 년도에 태어났어?"

 "2015년이요."

 "어? 나도 5자 연도에 태어났는데~"

 가끔 20세기에 태어난 내가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위인전의 한 페이지처럼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거기에 2000년도에 태어난 아이들과 2010년도에 태어난 아이들은 또 차이가 난다.

 "올해가 무슨 띠인 줄 알아?"

 "토끼띠요, 검은 토끼래요."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하다. 몇 십 년이 또 지나면, 한글을 다 뗀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열두 띠 중에 뱀과 용은 연구 중이다. 사실, 뱀은 싫고 용은 자꾸 크롱이 된다

 나는 그릇을 만들기보다는 조형물을 만드는 수업을 더 좋아한다. 그릇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왜 맨날 모양만 만드냐는 소리를 자주 듣긴 한다.

 글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요즘 아이들은 규격화된 손놀림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블럭놀이를 많이 해서 구조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것엔 익숙하다. 하지만, 규격화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할 때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다. 크기와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아이들이 자유자재로 흙을 늘였다가 붙였다가 하기를 희망한다.

 손끝이 야무진 아이는 섬세한 표현이 가능할 테고, 야무지진 않지만 손힘이 센 아이는 과감하게 덩어리를 떼었다 붙였다 할 것이다.

 흙은 내가 누르면 누르는 데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과하게 하면 찌글어질 것이요, 모자라게 하면 아름다움이 부족할 것이다.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국보 270호, 12세기 제작

 나의 열두 띠 수업에 영감을 준 작품이다.

 아기원숭이가 엄마원숭이 얼굴에 살포시 손을 댄다. 참으로 서정적이다. 겨드랑이 사이로 보이는 아기원숭이 발에서 제작자의 섬세함도 느낄 수 있다.

 비례적으로 보면, 엄마원숭이의 몸은 약간 통이다. 용도가 연적이기 때문에 기능상 적합한 형태다.

 높이는 10cm 정도이며, 덩어리로 만든 후 반을 갈라 속을 파내어 완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등 쪽에 실금이 있는데, 속을 다 파낸 후 자른 부분을 다시 붙이는 과정에서 약간의 틈이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엄마원숭이 정수리로 물이 들어가 아기원숭이 정수리로 물이 나오는 구조인데, 이 고려도공은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요즘 추구하는 문, 이과 감성을 한 번에 보유하고 있는 미래인재형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그리 뛰어난 선생님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인상적인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

 유람을 가는 기분으로 한강을 건넌다.

 나를 기억해 주고 흙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정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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