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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Mar 16. 2023

돌려주세요

철화백자 호로문 호

 #1

 "조 작가님 되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참 공모전에 출품하던 시기였다.

 서울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현대도예공모전에 출품해서, 입상하고 작품 전시 중이었는데, 관계자가 분이 전화를 건 것이다.

 "관람객의 실수로 작품이 파손되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수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머릿속에는 두 가지가 떠올랐다.

 "배상하기로 합의했는데, 금액을......"

 작품을 회수하러 전시장에 갔을 때, 박스에 담긴 파손된 조각을 보면서, 사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남은 두 개의 기둥을 뽁뽁이로 둘둘 말아 옆구리에 끼고, 버스를 타고 종로작업실에 돌아왔다.

 열심히 만들었고, 즐거웠고, 입상도 했고, 약간의 위로금도 받았는데, 더 이상 무엇이 남아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가 생각이 나서, 자료를 찾아보니, 오래된 웹사이트에서 철 지난 조작가의 작품이 홀로 외로이 저렇게 둥둥 떠다니고 있더라.


#2

 "권사님, 이 작품이 마음에 드네요. 큰 목사님과 하나씩 나누면 될 것 같습니다."

 고향집에 심방을 오신 작은 목사님께 엄마가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시다가 기념이 될 것 같다고 작품을 보여드렸는데, 많고 많은 것 중 고른 것이 내가 받은 가장 권위 있는 상의 작품이었다.

 두 번은 없을 불후의 명작이다. 나는 젊었고 과감했으며, 그 누구도 쓰지 않은 신소재로 작업을 했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은사셨는데, 느낌상 그 선생님은 나에게 표를 주지 않았을 것 같다. 3명의 심사위원 중 한 외국 교수가 참 마음에 들어 했다고 지나가는 말씀을 하셨으니 말이다.

 'お元気ですか'


 가끔 뉴스에서 환수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국가적 입장과는 상관없이 나의 두 작품이 떠오른다.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돌려받을 수 있을까?

좌: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 박물관,  우: 철화백자 호로문 호

 대학원을 다닐 때만 해도, 오사카에 가면 동양도자박물관은 꼭 가야지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기억이 났다. 나는 이제 도예가가 아닌, 반은 일반인이다.

 문득 호랑이항아리가 백자인가 분청사기인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봐야 한다던 도자사 수업시간도 떠올랐다.

 자세히 보면,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바탕색이 조금 다르다. 흰색 무언가로 아랫부분을 남기고 덮어쓴 느낌이 있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화장토를 덮어쓴 분청사기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짙은 갈색의 안료(철사)를 이용해 무늬를 그려서 철화백자로 분류된다.


 도공은 어떤 생각으로 호랑이를 그렸을까?

 관요가 활발하게 잘 나가던 황금기에는 여유롭게 코발트를 팍팍 찍어가면서 작품 세계를 펼쳤지만, 왜란으로 정세가 어지러워 자연스럽게 낙향을 하고, 어찌어찌 주어진 환경에서 항아리를 빚었겠지.

 더는 내게 남아있는 미련도 없고, 붓에 붉은 철을 꾹 찍어서 휘휘 놀려가며 자연스럽게 호랑이를 그렸겠지.

위엄이 느껴지지 않아도 좋았을 거야. 그저 소박한 나의 삶이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으니까.


 그래도 지금쯤은 누군가 기억해 주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

 고개를 들어 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 속 호랑이를 다음 번에 가면 꼭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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