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없는 삶의 서글픈 자화상

원하지 않았으나 도망칠 수도 없는 삶

by 초미세뷰

회사 생활이란 요즘 부쩍 숨 막히게 느껴진다. 공기가 텁텁하다 못해, 폐부를 찌를 듯 답답하다.

성과라는 우상을 향해 광적으로 달려가는 듯한 조직은, 결국 주 6일 근무를 사실상 선포했다. 의무가 아니라는 말은 허울일 뿐, 누구나 눈치라는 보이지 않는 법에 따라 움직인다.

상사들은 이 명령을 메신저에 남기지 않는다. 기록은 증거가 되고, 증거는 노동법 앞에서 족쇄가 되니까! 머리는 기막히게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간의 연장이 곧 성과의 배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노동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안일해지고 의지는 희미해진다. ‘오늘은 자정까지 버텨야 한다’는 전제만으로도 하루의 긴장이 일찌감치 풀려버린다. 이리하여 의욕은 바닥난 장작처럼 불을 잃고, 생산성이라는 단어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저녁이 없는 삶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의 부재다.

귀가하자마자 기계적으로 샤워를 해치우고, 재빨리 머리를 말리며, 군인처럼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불을 끄고 이불속에 몸을 파묻는 일련의 동작은, 마치 존재를 최소한의 기능으로 환원시키는 의식 같다.

다음 날 버티기 위해 오늘을 지워내는 삶, 거기엔 저녁도, 나도 없다.

문득 모니터 불빛 앞에서 묻는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던가. 대답은 불투명하다. 원치 않았으나 동시에 버릴 수도 없는 삶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두렵다. 회사를 나간다면 무엇으로 생을 지탱할 것인가. 사표를 던지고 나간 그들의 호기로운 뒷모습은 결국 빈 지갑 앞에서 좌초한다.

자아를 찾겠다던 친구, 창업을 외치던 동료들. 끝내 생활비라는 현실의 파도에 휩쓸린다. 나라고 다를까. 그래서 한숨은 더욱 깊다.

이직을 떠올려보지만,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일 뿐이다. 얼어붙은 고용시장 속에서 확신은 부재하고, 남는 것은 답답함뿐이다. 그럼에도 작은 위안이 있다면 글이다. 기록이라는 행위만이 나를 회사의 부속품에서 인간으로 되돌린다.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는 너무 쉽게 우울에 잠식됐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현실을 잠시나마 지워주는 따뜻한 문장이 그립다. 흙냄새 묻어나는 토속적 이야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비추는 문학적 상상. 그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도피처이자 유희다.

가끔은 궁금하다. 또래의 사람들은 무엇을 즐거움이라 부르며 살아가는가. 혹은 예전보다 내 마음이 각박해진 것인가.

아마도 놀이라는 시간을 철저히 배제해 온 내 사고방식이 문제일지 모른다. 효율을 좇아 유희를 삭제한 삶은, 결국 나를 더 푸석하게 만들었을지도.

그래서 나는 오늘, 내 마음에게 제안한다.

글 말고도 다른 무언가, 아주 사소하더라도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보자고. 그것이 삶을 구원하는 작은 시작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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