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춈푸씨 Jun 19. 2021

창업일기. 인스타그램 어렵다그램

예상치 못한 복병, SNS...


인스타그램. 

창업을 결심하고 만난 복병. 

회계, 경영, 인사... 뭐 이런 것들이야 예상했던 어려움이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SNS 스타까지는 아니어도, 꾸준히 인스타그램 세상 속에서 내가 하는 것들을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는 특명이 내게 내려졌다. 문제는, SNS를 활발하게 하는 편이지만, 실은 즐기지는 않는다는 점. 적극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해야 하는 형편(?)에 놓여 있지만 영 소질이 없다는 걸 매 순간 낀다. 짧은 글, 통통 튀는 문장, 눈에 확 띄는 사진...무엇 하나 나와는 맞는 게 없다. 나는 소문난 '똥손'인데다가 짧고 간결한 글은 젬병이다. 내 글은 길고 무겁고 축축 늘어진다. 내가 그걸 세상에서 제일 잘 안다. 이렇게 글쓰는 건, 평생의 독서와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만들어진 거라 -쉽게 바뀌지 않는다. 

-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이 싫다거나 그를 즐기는 사람들이 저급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다. 인스타그램은 내게는 철저히 읽는 즐거움을 주는 매체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감정과 시선을 구경하는 게 즐겁다. 직업이나 학력에 상관 없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센스'만 있다면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니까.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보다 품도 훨씬 덜 들어서, 접근성도 높다. 인스타그램 속에서 나는 철저히 세상에 뒤떨어진 노인의 마음이 된다. 젊은 사람들이 흥겹게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기분이다. 그래, '흐뭇하다'. 내 나이엔 맞지 않는 이상한 감정을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을 보며 느낀다.

-

예전엔 이렇게 가끔, 즐겁게 구경하던 앱 속 세상이 갑자기 내게 어마어마한 현실의 벽이 됐다. 백패커스플래닛을 시작하면서 내 개인 인스타도, 공식 인스타그램도 잘 꾸려가야 한다는 특명이 생겨버렸다. 내게 가장 익숙한 SNS는 페이스북이다. 이유는 딱 하나다. 사진 없이, 긴 글 써도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페이스북은 '감성'보다 '이성'의 공간이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글보다는 사고에 기반한 글을 써왔다. 사회혁신, 임팩트투자, 읽은 책에 대한 평.... 눈치챈 사람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썼다고해서 인스타가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을 SNS에 드러내는 게 너무 어렵다. 누군가는 창업가로서 SNS에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 태도는 아주 좋은 거라고 말했다. 분명 그런 면이 있겠지만, 글쎄. 통통 튀는 감각으로 사람들과 '소통'해야하는 SNS는 내게 너무나 새롭고, 또...너무나 넘기 힘든 산이다.

-

그래도 노력하고 있다. SNS를 맡아주기로 한 팀원에게 본업이 있어, 타이밍 놓치지 않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선 내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렵고, 때로는 머리를 싸매기까지 한다. 특히 제일 어려운 건, ~다. 하는 식의 글, 끽해봐야 ~했지요. 하는 식의 문어체에 익숙한 내가 말투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분~하셨어요? 하는 식의 대화체로 글을 올리려다보니, 할머니 춈푸가 자꾸 나 자신을 비웃는다. "야, 니가 인스타 셀럽이니?" 내게 SNS는 나의 글, 아주아주 고전적인 글, 을 -다. 형식으로 올리고 거기에 반응할 사람은 반응하고 아닌 사람은 지나가는 곳이었어서, 적극적으로 반응을 유도하는 글은 쉽지가 않다. 누가 네 글을 본다고 말을 거는 거야, 그렇게? 

-

쿡쿡 웃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다보면 아, 그래서 어려웠구나. 알게 된다. 인스타그램의 글은 타인에게 말걸기였지만, 나는 나의 글을 쓰는 데 익숙했으니까.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내 마음에 누가 공감할까? 나는 내 글을 혼자 쓰고, 마치 유리병 안에 편지를 넣어 지구가 망하기 전에는 누군가 한 명은 읽겠지, 하는 심정으로 휙 던지는 사람처럼 글을 써왔다. 그건 어쩌면 내 글이 내가 좋아하는 재능있는 작가들의 글처럼 뛰어나지도, 생각이 빼어나지도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데, 내 글이 부러 소음 하나를 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배려심이 뛰어나선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런 삶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글에 대한 애정과 완벽주의 때문이다. 기자로 일할 때, 영화감독이 꿈이었다는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기자 중에 그런 사람 많지. 평생 글쓰고 싶은데 글만으로 먹고 살기엔 자신이 없었던 사람들. 근데 그거 아냐, 기자 하다 보면 글 못 쓴다. 이야긴 못 써." 어떤 면에선 정말 맞는 말이다. 기자란 사실을 보고, 내 마음의 글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글을 써야 하니까- 오로지 내 마음음 안에서 진실되게 자라나서 무럭무럭 커가는 상상력이 가는대로 글을 놀리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인스타그램은 그동안 내겐 남들이 다 하니 만들고, 가끔 일상 사진을 올리고 해쉬태그도 전혀 안 다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제 내겐 무궁무진한 인스타그램의 세계가 열렸다. 그리고 힘 빡, 주고, 열심히, 그 앞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나다운 걸 지켜가면서, 그 세계의 문법을 어느정도는 따라가면서, 나만의 집을 만들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 정말  #어렵다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ep4. 한 달 만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