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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Sep 21. 2023

제주에 갈 결심

충동여행기 PT.1

나에게 아무 키워드를 던지지 마라. 그 키워드가 내 뇌리에 박히는 순간 실행하지 않을 수 없으니. 동생이랑 추석 때 무엇을 할까 한 달 전부터 이야기했을 때, 뜬금없이 동생 입에서 제주가 나왔다. 바로 즉시 기각. 뭔 제주야. 제주 갈바엔 순천(본가) 가지. 제주는 뭔가 큰 맘을 먹고 가야 하는 국내 여행지다. 울릉도 다음으로 제주도는 그냥 훌쩍 떠나기엔 부담이 가는 도시다. 그렇게 기각을 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비행기값이나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사이트에 들어갔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날짜에는 이미 꽉 찼지만, 추석 전주에는 가격이 합리적이었다. 그래.. 근데 둘이서 어떻게 가겠어. 포기했더랬다.


그렇게 몇 주 뒤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제주에 간다고 했다. 언제쯤 가냐 했더니 추석 전주. 훌쩍 떠난다길래 너무나 부러운 마음에, 그리고 나는 떠날 수 없음에 슬펐다. 왜 슬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난 제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믿었는데, 날이 선선해지니 제주도가 그리운 걸까. 친구는 일정을 하나도 짜지 않았다면서 심란해 보였지만, 나는 그냥 그 심란함마저도 나의 것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뜬금없지만, 나의 심리적 상태를 설명하자면, 요즘 쉬면서 일상에 별일이 없어서 차분하다가도 이 차분함을 요란하게 깨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동생의 예민함이다. 회사에서 일을 집에서 가져와서 하는데, 회사에선 자유분방하지 못한 그 갇힌 예민함과 짜증이 집에서 터진다.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영향을 받는 건 가족인 나다. 맨 처음엔 안쓰러운 마음에 듣기만 하고, 안타까워했지만, 회사일을 맥락도 없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대뜸 나에게 물어보거나, (그러다 답을 고민해서 말하면, 그건 절대 아니라 한다. 그러면서 정답을 요구한다.) 매일 밤 회사 가기 전에 옷 고르는 데만 거의 1시간을 쓰고 그 1시간 내내 나에게 어떠냐 질문을 하는 게 한 달을 지속되니 나도 지쳤다. 그냥 열심히 사이좋은 자매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난 대인배는 절대 못 되는 사람이더라.


어제 그의 짜증은 극에 달했고, 나는 잠을 거의 못 잤다. 동생에게 바락 짜증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얼른 홀연히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수요일부터 3일 내내 비행기표와 숙소만 알아보았다. 예상했듯 제주도행이다. 다른 곳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내일 새벽에 제주에 간다. 그냥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떠난다. 제주의 짠기를 잔뜩 맞고 오면 서울에 시원하고 트인 공기마저 좋아하게 될 지도. 도피처로 제주를 골랐다. 제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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