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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Oct 09. 2023

모국어에 대한 단상

모국어



1. 오늘 문득 전시에 가고 싶어서 서울시립미술관에 방문했다. 마침 전시하고 있던 주제는 "이것 또한 지도"였다. 지금까지 서구의 시선에서 지구가 측정되고, 지도로 쓰였다면, 지금까지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 언어, 대상으로 지도를 표현한 전시였다.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다양한 매개체를 이용한 탓에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나를 다양한 방식으로 스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도 기억나는 작품 하나가 있었는데, 쉔신(Shen Xin) 작가의 [지구는 푸르네]라는 비디오로 된 작품이었다. 38분이 넘는 작품이라 전부를 보진 못했지만, 미술관에 있는 영상물 중 가장 몰입해서, 가장 오래 감상했다. 어쨌든 처음 듣는 티베트어가 신선했고, 캄캄한 대지에 빛이 들어오고 지는 것을 표현한 글의 해석과 대화 그리고 빛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비디오를 한참을 보았다. 티베트 언어는 특히 자연을 묘사할 때 그 지역의 특성상 '새'와 관련된 단어가 많은 것 같았다. 여러 단어 중 기억나는 것 하나를 공유하자면, '밝아진다'는 단어에 새, 길, 불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언어는 환경을 담고, 그 얼을 담는 것이 맞았다.


2. 나의 모어, 한국어는 어딘가 납작한 언어다. 특히 다른 언어를 배우고 나서 한국어를 소리 내다보면, 개인적으로 경직되고 올곧고 납작한 느낌이 난다. 그에 맞게 언어의 창시자인 세종대왕은 자음과 모음을 만들어 네모칸에 글자를 효율적으로 잘 집어넣었다. 한국만큼 효율적이고 정리정돈을 중요시하고 올곧음에 집착하는 나라가 있을까. 이러한 특성들이 언어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3. 사실 요즘 내가 왜 한국어가 모어인가에 대해 좀 야속할 때가 있었다. 영어 혹은 프랑스어가 모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다. 언어학에서 Language family (어족)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언어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비슷한 언어끼리 친소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개념을 설명할 때 쓰인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는 같은 어족에 있고, 독일어와 영어는 그 뿌리가 같다. 그래서 더 쉽게 상호적 습득이 가능하다. 다만 한국어는 정말 독신가정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한국어를 배우면 이 지구촌 세계에서 다소 고독하다. 그런 이유로 한국어가 나의 모어라는 것이 야속했다. 


4. 그럼에도 모어는 모어인 것을. 싫어해도 나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끔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면서 나의 또 다른 자아를 구축하려 애쓰지만서도 내가 한국어를 쓰는 한국어 화자라는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아가 이제는 싫지만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언어이며, 난 이 언어로 세계를 열심히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세계가 조금은 따분하고 야속하더라도 절대 놓을 수 없는 집이다. 마치 돌아갈 고향이 있어서 마음이 푸근한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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