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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Oct 23. 2023

22

스물두살을 떠올리기

테일러 스위프트의 곡 '22'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16살이었다. 통통 튀는 노래였고, 가장 맘에 드는 가사는 아래와 같다. 

We're happy, free, confused, and lonely at the same time 
It's miserable and magical. 


아직 고등학교도 가지 않은 나는 스물두 살 정도 되면 저런 감정을 느낄까 싶기도 했다. 행복하고 자유롭고 혼란스럽고 동시에 외롭기까지 한 복잡 미묘한 그러나 탁 트인 시원한 그런 감정. 그리고 스물둘이 아득해진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스물두 살 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저런 감정을 확실히 겪었는지 떠올려본다. 나 스물둘에 뭐 했지?


LONELY

지금 나이에 내세울 업적이랄 것이 없으니 스물둘에 뭐 했지 보단 어떤 감정이었는지 떠올려보았다. 나는 스물두 살을 첫 연애에 사귄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며 시작했다. 1년 정도 매일 붙어있다 연락이 안 되는 군인남자친구를 두게 돼서 나는 혼자 캠퍼스를 돌아다닐 때 조금 외롭다 느꼈던 것 같다. 늘 솔로였으면 외로움도 안 느꼈을 텐데, 괜히 연애를 해서 부재만 진득이 느끼는 것 같아 슬펐던 기억이 난다. 


FREE

이런 슬픔과 동시에 나는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나의 시간이 엄청 많아졌다. 사실 첫 연애라 내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만 연애가 아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나 홀로 잘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다 같이 하면 좋은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곰신이 된 나는 나의 넉넉한 시간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22살에 난 처음 혼자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가보았다.


CONFUSED

처음 간 프랑스는 내가 감당하기엔 부피가 컸다. 그냥 혼돈 그 자체가 몰려왔다. 난 구글맵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철저한 네이버 지도 유저였다. 네이버 지도가 프랑스에서 작동할 리가 없었다. 길도 못 찾고, 평소에 계획적이지도 못해 나는 프랑스로 몸을 옮기기만 했지, 어떤 목표도 없이 멍하게 있었다. 나는 그저 파리에 압도되어 남들이 다가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지베르니, 오르세 미술관, 방브 빈티지 마켓, 퐁피두, 마레지구 등등  유명한 것들을 내가 내 발로 직접 가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했고, 그 와중에 끊임없는 캣콜링도 이어졌다. 얼어버렸다. 그래서 같이 잠깐 파리에 있기로 한 과동기 친구를 성가시게 만들었다. 모든 일정은 철저히 계획적인 그 친구가 다 짰고, 나는 멍한 상태로 그 친구를 졸졸 따라다녔다. (여전히 그 친구에게 미안함이 크다.) 난 그때 알았다. 생각보다 난 겁이 많고, 낯선 환경에서 혼란스러워했고, 정신을 빼앗겼다.


HAPPY

낯선 환경에 많이 노출됐지만 그래서 한참 얼음 상태였지만 세상에 좋은 것들도 많이 보았다. 한 달 동안 프랑스 남부 리옹에서 살아보고, 이탈리아에서 기가 막힌 피자와 젤라토를 먹었다. 내가 파스타를 나쁘지 않게 잘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애인과 사이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애틋함은 넉넉한 거리에서 쌓이지 않나. 


사실 열심히 더듬어 보았지만 22살 때의 기억이 정말 복구되진 않는다. 나의 스무 살 초반 기억을 열려면 사진첩을 열 텐데 개인적인 사유로 사진첩 열기가 힘들다. 사실 happy, free, confused and lonley at the same time 은 스물두 살에 국한되진 않은 것 같다. 그저 살면서 하루하루가 그런 걸. 그래서 비참하기도, 마법 같기도 한가 보다. 이 모든 감정이 한 세계에, 단 하루에, 그리고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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