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뭐 이리 힘들게 굴어, 그냥 하면 되지. 세현이 나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일 것이라 확신한다. 어렸을 때의 나는 '그냥' 되는 것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 밥도 그냥 먹으면 되고, 공부도 그냥 하면 되고, 그림도 그냥 그리면 되고, 운동도 그냥 하면 됐다. 그냥 해도 어느 정도 중간은 갔던 축복을 가진 줄도 모르고 나는 '그냥'의 힘을 '그냥' 믿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이 어렵다, 상사들 눈치 보는 게 어렵다,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도 어렵다 등등 동생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나는 부끄럽게도 아주 배려 없게 '그냥' 해봐.라는 아주 잔인한 단답형을 내리는 인간이었다. "일단 생각하지 말고 실행을 해보고 실패하면 뭐 어쩔 수 없고. "의 마인드에서 '그냥'이란 말을 쉽게 내뱉었는데, 동생에겐 뭐든 일을 너무 쉽게 툭툭 해버리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동생은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언니는 그냥 하면 되겠지만, 나는 그게 안돼.
언니는 지금까지 그냥 하면 다 엔간히 잘했잖아. 나는 늘 잘하지 못했어.
그냥 하면 안 돼. "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했을까. 나는 그 당시 앞통수, 뒤통수는 다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단순한 인간이었나란 생각도 들었고, 내가 늘 뱉는 습관성 어휘가 상대에게는 얼마나 심리적 박탈감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얼마나 잔인한 말일까 싶다. 매일을 곰곰이 고민하고 실행하고, 계속 잘하고자 노력하는 이에게 뭔 그런 고민을 해, 그냥 하면 되지 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리고 사회에서 '그냥' 한다는 인간들을 생각보다 퍼포먼스가 좋은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쉬운 사람들이 있고, 모든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나를 너무나도 모르는 타인에게 나를 위한 조언을 구한다. 모든 것은 다 그 사람 나름인데 말이다. 아무래도 조언으로 그냥 하라는 말은 이제 좀 별로인 것 같다. 참 조언도 어려운 세상이라 말하겠지만, 뭐 어떻겠나, 원래 조언이 제일 어렵다. 그냥 보다는 just (딱 맞는) 말을 하는 연습을 하는 것, 상황을 두리뭉실하게 단순화시켜 판단하기보다 적확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이건 비단 상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