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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Nov 08.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비합리적이게 살아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큼 나에 대해 적확하게 말해주는 용어가 또 없는 것 같다. 보통 난 a가 좋을 수밖에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b가 좋아.라는 앞 두 문장에서 a가 보편적인 나에 대한 지식일 때 b는 당연한 상황 속에서 a를 고르기 높은 확률임에도 나의 취향은 b임을 알려준다. 수많은 보편적 지식과 경험이 a를 외치더라도 b가 나에겐 정답인걸.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 나오는 것들이 나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 같다.


최근에 알게 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트 중 하나는 직접 내려서 마시는 아침 커피이다. 그냥 커피가 아닌 무려 방탄커피. 사실 출근하기 전에 잠을 더 넉넉히 자거나, 조금 늦장을 부릴 수도 있다. 옷을 좀 더 신경 쓰거나 조금 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에 향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방탄커피는 그냥 커피보다 만들어 마시기 까다롭다. 버터, mct오일을 계량해야 하고, 커피를 내린 다음 버터와 오일이 잘 섞이도록 믹서기에 융화시켜 주는 과정이 요구된다. 아 맞다, 설거지 거리도 엄청 나온다. 커피머신과 기름이 낀 믹서기 청소가 얼마나 성가신지는 덧붙이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을 15분을 줄이고, 지하철 역에 뛰어가는 한이 있어도 커피를 내린다. 아침부터 라테를 마시기엔 부담스럽고, 매일 오후에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예정되어 있어 조금 다른 것을 마시고 싶을 때, 그리고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에 아침 식사 대용으로 좋다. 원두도 물론 내가 좋아하는 정도로 블렌딩 된 원두다. 버터도 내가 좋아하는 버터를 고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침에 따뜻하게 호로록 마시는 것은 나의 아침의 작은, 확실한 행복이다. 너무 바쁜 아침임에도 그런 베짱이 같은 여유를 부리는 이유는 나는 아무리 바빠도 조금은 숨을 돌리려는 인간임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고 그런 안정감을 느끼며 아침을 시작하는 스스로가 좋다. 그저 좋아서 하는 것이었는데, 설거지를 매우 싫어하고 아침에 옷 입기에도 바쁘다는 동생은 내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아침부터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내가 아침에 굉장히 합리적이지 못한 루틴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바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 귀찮은 것을 거의 매일 하고 있던 것이다.


비합리적인 것들이 삶을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많은 수의 현대인들은 가끔 근면성실을 바탕으로 한 합리성에 과하게 몰입하고 있는 것 같다. 아침에 공복유산소, 철저히 계획된 하루 일정, 시간을 최소화한 이동 루틴, 탄단지를 철저히 챙기는 것들 등등. 물론 절대 해로운 것이기보다 모두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갓생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건대, 시간이 걸리고 다른 이들은 조금은 비합리적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삶을 구한다 생각한다. 물론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우리 조금은 다 같이 양보해서 퇴보하자(?) 게을러지자(?) 조금은 비합리적이게 살자(?) 모두가 빠르고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서로에게 동기부여하며 속력을 붙이는 세상에서 다 같이 속도를 조금만 늦춘다면 다 같이 덜 괴롭지 않을까. 농담같은 말로 들리겠지만 난 꽤나 진심이다. 



조금이라도 예쁘게 찍고 싶어서 굳이 침실로 커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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