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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Nov 20. 2023

추억의 맛

그 시절 미친 듯이 먹었던 음식들이 있다.  특별하지 않지만 계속 손이 갔던 음식들. 그리고 그런 음식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곳으로 가게 되는 여행은 덤이다. 마치 영화 <라따뚜이>에서 라따뚜이를 먹고 자신의 행복한 과거로 돌아가는 그 까다로운 음식 평론가처럼 우린 늘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리듯 추억의 맛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 같다. 


1. 영혼의 간식, 아티제블랑제리 고구마 데니쉬파이

출처 : https://m.blog.naver.com/jinta77/110115140158

나름 열심히 찾아보았다. 예전에 홈플러스 "아티제블랑제리"에 가면 저렇게 봉지에 파는 고구마 데니쉬가 있었다. 주변엔 땅콩맛 나는 가루가 잔뜩 묻어있고, 안에는 고구마 앙금이 들어간 데니쉬 파이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곧장 달려오면 늘 테이블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간식이 이 데니쉬 파이었는데, "또 있구나. 아 질려"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시원한 우유랑 같이 먹으면 언제 내가 그런 불만을 가졌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 파이는 방과 후의 맛이라고 해야 될까. 우유 한잔과 고구마데니쉬파이. 친구들 모두 학교 끝나고 곧장 학원으로 열심히 달려가던 시절, 나는 용감하게도 저 고구마 데니쉬 파이를 한입 물고 식곤증에 몰려 잠을 잔 다음 구몬학습을 푸는 일상을 이어갔다. 거의 엄마의 장바구니에 늘 있던 고구마 데니쉬 파이. 우리 삼 형제는 여전히 그때 저 맛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주 나른하고 여유로운 맛이라고.


2. 엄마의 도시락

소풍의 묘미는 도시락이란 말에 이견이 있는 사람이 잘 없을 것 같다. 늘 점심시간만 기다리던 나는 이미 도시락 안에 무슨 메뉴가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처음 그 도시락을 여는 설렘으로 통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자주 해주던 도시락 메뉴는 시금치가 꼭 들어간 김밥, 표고버섯이 꼭 들어간 볶음밥, 그리고 그 볶음밥에서 파생된 크로켓, 유부 초밥 등등.. 나의 메뉴는 어렸을 적 내 친구들에게 인기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엄마는 나름 고집이 있었다. 김밥에 시금치가 없으면 안 된다고, 표고버섯은 고기맛이 나기 때문에 풍미가 좋아서 꼭 볶음 요리에 넣어야 한다고. 나는 엄마가 그런 걸 다 제외해 주길 바랐는데, 엄마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도시락은 내 친구들에게 버림받아, 나눌 수 없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나만 독점한 엄마의 맛이었을까. 나는 표고버섯과 시금치로 만든 요리에서 엄마 생각을 한다. 남들은 손도 안 댔지만, 나만 열심히 꼭꼭 씹어 먹던 김밥과 볶음밥. 나도 슬프게도(?) 그 맛에 길들여졌는지, 표고버섯이 든 볶음밥이 좋고, 시금치가 들어간 김밥이 좋다. 



3. 외할머니의 갈비찜

사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요리다. 돌아가신 김영숙 여사님의 갈비찜. 갈비찜을 워낙 좋아하는 손자들 덕분에 외할머니는 손자들이 오는 명절 전에는 분주해지셨다. 고기 핏물을 다 빼고, 양념을 만들어 재워두고 이게 질겼나 싶을 정도로 오래 뭉근하게 끓여야 한다. 갈비찜을 엄마와 만들어봐서 더 잘 알게 되었는데, 이건 정말 마음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요리였다. 비법은 사실 시판 양념을 조금 섞는 거라고 들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시판 양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하는 부족한 부분은 할머니의 손맛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갈비찜뿐만 아니라 오징어무침, 그리고 할머니표 김치. 할머니의 부재로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최고의 갈비찜을 잃었다. 명절 때마다 쌀밥 몇 공기는 들어가게 했던 갈비찜. 살이 쪄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맛, 그렇게 많이 먹는대도 살찐다며 쯧쯧 거리는 어른들의 꾸중과 시선이 아닌 복스럽다며, 달덩이 같이 예쁘다고 토닥이는 외할머니의 손길.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추억의 맛은 영영 상실되었기에, 아무리 똑같이 재현하려 해도 재현될 수 없기에 추억의 맛이 아닐까. 맛에는 단지 물리적인 미각뿐만 아니라, 공기, 기분, 함께한 사람, 상황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래서 우린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의 맛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 글을 쓰다 보니 역시 나를 키운 8할은 누군가의 마음이 잔뜩 담긴 것들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추억을 하니 따뜻해지면서도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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