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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Nov 27. 2023

우리의 도시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떠오른 단상들. (더 추가될 수 있음)




            하루키가 정말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한 작품. 사람마다 각자 토해내야만 하는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정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이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내가 읽은 작품들만 하더라도 플롯이 어떻게든 결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모든 책을 다 읽진 않았다..) 이 책은 읽다보면 흐름을 따라가지만 결국 종결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그런 희끄무레한 기분을 내내 가지면서 읽게 됨. 마치 계속 부유하는 부표처럼. 그저 계속 영속적 시간 속에 흘러가는 기분을 느끼며 읽게 된다. 그래서 클린한 결말과 서사전개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불호이지 않을까 생각함.          


            하루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하루키가 늘 말하는 "믿는 것이 중요하다" 를 또 보여준 소설. 하루키가 잘하는 것을 또 했구나란 생각이 듦. 내가 생각하는 하루키의 매력은 현실과 비현실을 교차시키고 그럴듯 하게 섞어서 결국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비현실인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인데,  이번 소설도 두가지 상황을 열심히 교차시키고 혼란스럽게 하는데 얼추 성공했다고 본다. 잘하는 것을 잘한 것이고, 애초에 독자들의 기대 또한 높았으니 신박함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럽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실망스럽지는 않다.          


            하루키의 은유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것에서 많이 차용하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그런 현실적인 비유들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데 쓰이는 것이 흥미롭다.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실재적 도구로 미지의 세계를 같이 탐색하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그리고 하루키는 그가 추구하는 정말 전형적인  첫사랑상이 있는 듯. 순수하고 말갛고.. 비밀을 품고 있고,, 그런 것을 탐하고..  이건 모두가 공감할 텐데 그런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는 지독한 성적 묘사라는  생각이 스치긴 했어서, 그리고 그런 묘사가 굳이 스토리 진행에 필요할까 .. 이런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맨 처음 하루키 소설을 읽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게 했지만, 그런 부분이 나올 떄마다 ㅇㅋ 또 시작이군. 하고 구태의연하게 넘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의 팬이 맞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음. (젠장)          


            책을 읽으면서 든 공상을 공유하자면, 정말 신들리고 싶다는 생각도 함. 언제부터 우리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을까.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퍼져있고, 증명될 수 없는 그런 믿음을 인류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영혼과 육체는 분리된다고 주장해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믿고 그런 컨텐츠(굿, 신점, 귀신, 종교, 윤회설.. 뭐 등등)들이 소비되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믿게 된 걸까. 아니면 아직 뇌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을 불가사의한 영역으로 표시하기 위해 '영혼'이라는 단어를 차용한 걸까. 이런 걸 적는 나.. 종교를 갖는 것이 맞을까.. (멈춰)          


            아무튼 이런 모호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보니 하루키는 본인뿐만 아니라 독자까지 무, 영속성, 모호함을 헤매게 하는 작가이다. 그렇게 힘껏 그리고 릴랙스하게 헤매다 보면 소설은 끝이 난다.          


            요즘 해결할 문제가 투성이인데 이 책은 현실 도피성으로 제격이었다. 이 책에 몰두하다보면 괜히 내가 지금 있는 현실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어느정도 초연한 감정을 갖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의 필체와 감성이 주는 편안함이 확실히 있었다. 나는 주인공이 매일 일주일치 빨래를 하고 요리를 직접 해먹고, 스스로 삶을 어찌 됐든 꾸리면서 자신을 돌보는 장면에서 굉장한 안정감을 느낀다.           





- 읽다가 좋았던 부분들을 옮기면서 마무리.



"짐작건대 현실은 하나만이 아니다. 현실이란 몇 개의 선택지 가운데 내가 스스로 골라잡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좀더 강하면 좋을텐데. 좀더 힘주어 너를 안고 좀더 믿음직한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단 한마디로 그 자리에 걸린 나쁜 주문을 확 풀어버리는. 올바르고 적확한 말을.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사실을 슬프게 생각한다."



"하얀 입김을 뱉으면서 강변길을 무작정 걸었다. 무거운 눈신에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울렸다. 강이 반쯤 얼음에 덮여 있어도 물소리는 또렷하게 귀에 와닿았다. 매섭도록 추운 밤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추위를 환영했다. 냉기는 내 몸을 안쪽부터 조이고 쥐어짜며, 머릿속을 부옇게 채웠던 생각을 마비시켰다."



"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 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그렇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새로운 움직임을 원하고 또 필요로 해요. 하지만 당신의 의식은 아직 그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간단히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서." 마치 봄날의 들판을 뛰노는 어린 토끼처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게 아니라,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어떠한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하루키 책 커버를 벗겨보라.. 훨씬 더 예쁜 책이다.  초콜릿향나는 커피와 채소차를 번갈아마시며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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