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채소
최근에 걸그룹 르세라핌의 사쿠라가 채소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어떤 채소가 좋냐는 질문에 "자기표현을 안 하는 채소"가 좋다 말했다. 그저 양념에서 맛이 묻혀버리는 무, 숙주, 팽이버섯 같은 것들이 좋다고. 자기 표현을 하는 대표적인 채소인 당근은 "당근이에요"라고 외치는 듯한 채소라 했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정말 공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특히 당근을 먹을 때가 생각나는데 카레에서 당근이 너무 큼지막하게 썰어있으면 그때부터 괴로워졌다. 이젠 도구를 잘 쓰는 어른으로 성장하여, 재빨리 숟가락으로 그 당근을 쪼개서 당근의 자기주장(?)을 무력화시킨다. 어렸을 때 편식하지 말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자기주장이 강한 채소들을 먹을 때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은 다행히도 채소들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과 식감이 매우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고, 입맛도 꽤나 바뀌어서 나는 채소를 나름 좋아하는 입맛이 되었다.
나의 채소 취향 연대기를 살피자면 우선 펭귄처럼 생겨서 흐물 해서 싫어했던 가지는 한국의 가지나물이 아닌, 가지튀김의 맛을 알아버린 순간 깨달음을 얻고 가지의 맛을 즐기게 되었다. 극강의 호불호 채소인 고수도 오랜 길을 돌아와서 고수를 즐기게 되었고, 연근, 표고버섯, 취나물, 마늘종 등 여러 채소도 이제 먹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극복 못한 것이 있는데, 바로 달래이다. 초등학교 급식시간에 나온 달래 나물의 충격적인 맛에서 나는 헤어 나오지 못한다. 급식을 남기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에 난 달래를 한입에 넣고 몇 번 씹고 삼키려 하는데 삼켜지지가 않았다. 너무 맛이 없었기 때문에! 달래를 신박하게 조리할 수가 있을까? 다른 채소들은 다양한 조리법이 있어서 나의 묵은 편견을 벗겨가며 입문을 했지만 한국에서는 달래는 그저 달래비빔장, 달래나물, 달래된장국 정도이다. 맛과 식감은 바뀌지 않는다. 달래의 알뿌리 부분은 더더욱 싫다. 오둑 씹는 순간, 입안에서 퍼지는 불쾌한 알싸함.
싫어하는 것이 좋아지려면 놀라게 할 만큼의 충격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인생에서 달래를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올까. 나의 엄마는 언젠가 그 맛을 알게 될 거라 장담하는데, 나의 음식사에 달래를 끼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