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담당자가 된 직후던가? 어떻게 홍보를 해야할까 인터넷을 끄적거리다가 우연히 본 게시글이 생각난다. SNS계정 프로필을 보면 그 사람 나이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10대는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해놓는단다. 20대가 되면 자기 사진이나 자기 애인사진을 해 놓고. 30~40대는 결혼을 두고 갈린다. 결혼을 했다면 절대 다수가 결혼식 사진이나 아기들 사진이고 안했다면 여행사진이나 동호회, 자기계발, 취미활동 같은 사진을 해둔다는 것이다. 50대가 이 게시물의 킬링포인트다. 50대 프로필은 뭘까? 바로 꽃, 나무, 산 사진, 구름 사진, 대자연이다. 60대는? 없다. 안해놓는단다.
그저 재미로 본 글이었지만 통찰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럴싸했다. 혹시나하고 내 카카오톡에 있는 사람들 프로필들을 찾아보니 나이별로 얼추 들어맞았다. 여기서 반전은 당시 20대였던 내 프로필은 봄에나뭇잎사귀 사이로 햇빛이 비추던 사진 것었다. 안그래도 평소에 마누라가 나더러 나이도 어리면서 프로필이 무슨 팀장님 같다고 바꾸라고 했던 사진이다. 우리 엄마는 10년전에 찍은 쌍무지개 사진을 해놨더라.
중간에 역사 얘기를 하나 할까한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결국엔 신라가 살아남았다. 맨날 싸우다가 조용해지니 심심했는지 누군가 ‘신라의 중앙은 어디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고 왕이 걸음걸이가 똑같은 사람을 뽑아 각각 북쪽 끝, 남쪽 끝에서 걷게 해서 만난 곳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 여기가 국토의, 세계의 중심이다 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충주시에 있는 중앙탑 얘기다. 그런데 갑자기 웬 역사얘기? 내가 충주시 SNS담당자가 됐을 때 충주시 페이스북 첫 화면이 바로 이 중앙탑이었다.
충주시 중앙탑 사진
처음에 얘기한 ‘SNS 프로필로 보는 나이’에 맞춰보면 충주시 중앙탑은 딱 50대 감성이었다. 생각해보라. 시골가면 벽에 걸려있는 달력. 딱 우리 할머니 댁에는 절에서 받아온 달력이 있었다. 절이야말로 대자연 퍼레이드 아니겠는가? 1년 열두달 페이지마다 멋들어지게 찍은 절 풍경사진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그 풍경 하나하나야 나무랄데가 있겠는가? 문제는 감성이다. 50대 감성. 50대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다만 나는 페이스북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며 유행을 만들어내는 가장 적극적인 계층은 20~30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사진들은 다 비슷했다. 단풍이 든 절 사진을 아무거나 가져다 놓고 ‘여기가 바로 어디 있는 무슨 절이다.’하면 사람들은 아마 ‘이런 데도 있어?’ 라며 그대로 믿어버릴 것이다.바로 그게 문제다. 사람들은 주어지는 정보를 일일이 팩트체크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보다 받아들인다. 또 이 경우는 사진이 주는 위치정보가 다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탑, 강, 나무 없는 동네가 있던가? 중앙탑을 모르는 사람에게 저건 절림사지 7층탑이다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은 “아 그래요?”할 것이다. 멋진 풍경이지만 충주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주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절림사지 7층탑은 내가 지금 나오는대로 떠들어댄거라 실제 그런 탑이 있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여기서 한밯 더 나아가 ‘과연 충주시 페이스북을 일부러 보러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엔 충주시청 관계자가 아니라면 굳이 들어올 사람이 없으며 들어온다면 실수로 잘못 들어온 사람쯤 아닐까 생각했다. 충주시청 페이스북에 있는 정보들은 충주시 블로그나 인터넷 검색에서 볼 수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충주시 페이스북은 충주시청 홈페이지 미러링이었다. 게시물은 꾸준히 올라왔지만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실제로 게시물당 ‘좋아요’는 10개 안팎이었는데 그나마도 충주시청 공무원이나 이장님, 부녀회장님 같은 관계자들이 눌러주는 것이었다. 어쩌다 댓글도 1~2개 있을 때가 있었는데 ‘오늘 하루 복된 하루 되세요.’같은 멘트와 2G폰에 쓰였을 법한 이미지 사진이 첨부된 경우가 많았다. 솔루션이 필요했다.
SNS, 그냥 편하게 말해서 인터넷에는 초당 수십만개의 게시물이 쏟아진다. 유튜버 대도서관이 2018년에 출간한 책 <유튜브의 신神>을 보면 하루동안 등록되는 유튜브 콘텐츠를 재생시간을 모두 다 더하면 60년이라고 한다. 당연히 지금은 그보다도 많을 것이다. 이렇듯 홍수라는 표현도 모자를만큼 콘텐츠가 쏟아지니 스쳐가는 콘테츠 중 무얼 볼지를 결정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고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통계도 있었다. 3초라하고 어디서는 1.8초라고도 했다. 게시물이 눈에 띄면 3초 이내에 그 게시물 제목을 클릭하고 기사를 볼지말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기로 한 것과 끝까지 다 보는 것은 별개문제다.
그렇다면 충주시 페이스북이 누군가의 눈의 띌 확률이 얼마나 될까? 공공기관, 그 중에 인구도 적고 성향은 양반의 도시라 할만큼 점잖빼는 의뭉스런 동네 페이스북을 누가 들여다볼까? 충주시청 페이스북에 누군가 들어온다면 시청 직원같은 관계자이거나 어쩌다 클릭을 잘못해서 들어온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이 단계에서는 충주시 페이스북에 콘텐츠가 매력이 있어 다시 들어오게끔 한다는 생각까지는 감히 하질 못했다. 그저 누군가 실수로 들어왔다 나가더라도 충주라는 동네가 있다는 것, 그리고 충주에 이러한 콘텐츠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페이스북 커버를 바꿨다. 아무 무늬 없는 검은색 바탕 한가운데 노란색 큰 글씨로 ‘충주시청’을 적었다. 자고로 인터넷에는 ‘진지하면 궁서체’라는 말이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 마냥 인터넷을 할 땐 인터넷 법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공공기관은 진지하니까 궁서체를 썼다. 지금 당신이 들어온데가 어디 다른데 페이스북이 아니고 충주시청입니다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헷갈리지 않고 명확하길 바랬다.
그런데 충주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지금은 조금 더 나아졌을까 싶지만 당시만 해도 충주를 모르는 사람은 충주와 청주와 많이 헷갈려했다. 충주가 인구 20만인 아담한 도시인 반면 청주는 인구가 80만명인 도청 소재지다.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존재감 차이가 너무 컸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충청도 할 때 충이 충주의 앞글자를 딴 말인데 충주를 모른다는 건 좀 서운하지 않은가? 어떻게하면 충주를 청주와 헷갈리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통화하거나 소개를 할 때 충주요? 청주요? 헷갈려하면 충주요, 충성할 때 충! 하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충주시청 네 글자 위에 작은 글씨로 충성할 때 충! 이라 적었다.
여기에 중앙탑, 호암지, 라바랜드, 온천, 송어 비빔회를 주황색 글씨 고딕체로 적었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생각한 충주시 대표 콘텐츠였다. 거기에 빨간 글씨로 ‘믿음, 소망, 사과, 사과는 충주사과.’라고 한줄을 더 적었다. 충주 대표 특산물이 사과인데 많은 사람들이 아는 문장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를 패러디한 것이다.
충주라는 동네가 있고 거기엔 뭐뭐뭐가 있다!를 밝힌 것이다. 충주시의 첫화면에 할말을 다 하겠다는 욕심이었다. 우연히 충주 페이스북에 접속한 사람이 두번 들어올 거란 보장이 없다. 한번 눈에 띄였을 때 최대한 내용을 전달해야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정보를 때려박는다면 전체가 한 덩어리로 인지되어 그냥 외면될 것이다. 핵심만 전달해야 했다. 다른 공공기관처럼 폼 재지 않았고 느긋하지 않았다. 나는 결론부터 내밀었다.
그렇게 커버를 완성했지만 여백이 너무 많아서 허전했다. 그래서 여백에 작은 글씨로 충주란 글씨를 반복해서 적어놨다. 멀리서보면 하얗게 한줄씩 죽죽 그어놓은 것 같았다.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충주를 각인시키자하는 의도였다.
처음 바꾼 충주시 페이스북 커버
결과물은 허접했다. 멀리서 슬쩍보면 네온사인이나 밤하늘 같지도 않지만 그건 멀리서 슬쩍 봤을때였다. 하지만 그 정도면 됐다. 전국 명산이 나오는 달력같은 커버 보다는 이런 식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다만 걱정이 됐다. 보통 공무원이 평소 무슨 일을 하는지 밖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어떤 정책사업이 결과로 보여질 때까지 추진부담이 비교적 적은 것이다.
그런데 홍보는, 특히 SNS는 내가 올리는 콘텐츠들이 실시간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가 된다. 내 진정성이 검증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싹이 잘릴까봐 걱정이 됐다. 장난치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실험을 해보고 싶은데 실험도 해보기 전에 정서저항에 부딪히고 좌초될까봐 걱정이 됐던 것. 기획만 엎어지는게 아니라 공무원 조직 내에서 '나'라는 사람이 이상하고 장난스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혀버릴까봐 그것도 걱정이었다. 당시 나는 2~3년차 된 상황에서 공무원으로서 어떤 성과를 낸 것도 없고 조직 내에 나라는 사람이 제대로 인식되기 전이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콘텐츠를 올렸을 때 혹자가 성의 없다고 할까봐, 혹은 조직 내에서 아예 또라이로 찍혀 버릴까봐 겁이 났다.
그러나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욕을 할 지언정 이제껏 없던 관심을 끈다면 홍보에 진척이 있는 것이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면 내가 무엇을 했건 나에게 돌아올 피해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반응이 조금 늦게 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커버를 바꾸고 콘셉트를 시험하는 단계에서 혹여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다면 이후에 내놓을 수 있게 준비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반응을 보며 내가 준비할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좋게좋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새롭게 만든 커버를 등록하기 직전에는 다시 갈등이 됐다. 어쩃거나 전에 없던 사고를 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장님이 또라이를 찾았다며, 부산경찰을 잡으라고 했다며. 드라마틱한 시도를 하지 않고 드라마틱한 결과를 낼 수 있나? 이러라고 데려다 놓은 거 아닌가? 나는 진지하고 이건 최선이다. 나는 당당하다.
마침내 커버를 등록했다. 한편으로는 이후 반응이 궁금했다. 결과는 무반응이었다. 내심 들키지 않길 바랬지만 정작 아무도 몰라주니 은근 섭섭했다. 나 혼자 생각이 너무 많았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너 이번에 홍보실 가지 않았어?”
“갔지”
“업무 뭐 맡아?”
“SNS 맡았어.”
“야, 지금 충주시 페이스북 해킹당했어. 확인해봐”
“그거 나야”
“...”
“나라고”
문득, 이게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서 어떤 리액션이 없던걸까 싶기도 했다. 이제 간판을 다방에서 카페로 바꿨으니 메뉴도 쌍화차에서 아메리카노로 바꿔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