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남식 May 18. 2024

B급 포스터 처음 올리던 날

포스터에 과장님 얼굴 처음 쓰던 날

 처음 게시물 올리던 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걱정이 많았다. 올려놓고 혼나면 어쩌지, 악플이 달리면 어쩌지? 좁은 지역사회, 공직사회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면 내 남은 공무 생활 어쩌지?등등(당시 30년 이상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처음에 올린 게시물은 충주시 페이스북 커버였다. 일부러 퇴근시간에 올려놓고 퇴근했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과연 반응이? 딱히 없었다. 한편으로는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김이 빠졌다. 거기에 달린 좋아요는 당시 20여개. 평소 좋아요가 서너개 달리는 것에 비하면 많지만 어디가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조금 더 실험해봐도 되겠구나 정도 생각이 들었다.

 커버를 바꾸고 난 다음에 뭘 어떻게 해볼까 고민했다. 커버를 바꿨다는 것은 가게로 치면 간판을 바꿔달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간판을 다방에서 카페로 바꿨으니 메뉴도 쌍화차에서 아메리카노로 바꾸는 것이 인지상정. 어떻게 홍보할까 하다 마침 보건소에서 하는 '세계 모유수유 권장 캠페인 포스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생명, 육아, 출산 이런 가치는 인간의 보편가치니까 내가 이 주제를 홍보한다고 이를 불편하게 여길 특정집단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충주시가 직접 하는 정책이 아니다보니 시에서 이런걸 왜 하냐느니 경박하다느니 하는 비난을 받는다면 슬쩍 한발 빼기도 좋았다. 항상 탈출구는 있어야하니까.

 모유하니까 심청이 생각 났다. 그리고 모유, 수유라는 발음이 반복되는 게 꼭 당시 유행하던 랩 라임같기도 했다. 그렇게 심청이 모유수유 랩배틀하는 포스터가 탄생했다. 그림은 직접 그렸다. 그런데 이걸 그렸다고 하는게 맞을까. 정교하게 그리기엔 내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반대로 정교하게 예쁘게 그린다고 눈에 띌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범위 안에서 어떻게 하면 잘 보이면서도 메시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파워포인트에서 기본도형을 이용해 네모, 세모, 원을 이용해 최대한 단순한 형태를 만들고 원색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화장실, 교통표지판 등 표시나 픽토그램이 그렇듯 정보가 직관적이고 보는 사람의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뭔지 딱 인지할 수 있도록. 원색과 기본도형 자체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대부분 교과서 표지같이 단정하고 반듯한 포스터 사이에 괴발개발 삐뚤빼뚤한 조악한 포스터가 있으니 확실히 눈에 띄었다. 조악할 지언정 선은 넘지 않았다 생각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것을 등록했다. 등록했더니 그 당시에도 좋아요 30개 정도가 달렸다. ‘재미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같은 댓글도 한 두 개 달렸다.      

이 방식으로 다음엔 옥수수 홍보를 한번 더 올려봤다. 포스터가 좀 여러버전으로 만들어 올렸는데 반응이 막 뜨겁진 않았다. 사실 이때까지도 반응이 좋은지 나쁜지 가늠할 정도로 눈에 띄는 반응은 없었다.     






포스터에 처음 과장님 얼굴이 등장한 것은 <2016 호수축제>였다. 호수축제는 당시 충주 최대 축제였다.(지금은 다이브 페스티발) 그런데 힘을 비축하자며 매년 하던 것을 2년에 한번 하자고 콘셉을 바꾼 것이다. 2016년은 작년 한해를 쉬고 이번에 처음으로 더 크게 판을 벌이자고 하고 처음 맞는 해였다. ‘매년 하던 행사를 작년에 안했으니 벌써 다 잊혀진거 아냐?’, '아니 지역축제가 월드컵도 아니고...(물론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지만)'라는 등 걱정들이 많았다. 당시 상식으로 지역축제는 당연히 매년 하는 것이었다. 2년치 예산을 한번에 들이붓기로 한 것이라 행사를 주관하는 관광과 외에도 여러부서  행정력(=이라고 쓰고 공무원의 로동력)이 집중됐다. 예산이 몰렸고 그만큼 대중의 관심도 몰렸다. 당연히 준비하는 사람은 부담이 될 수밖에. 홍보담당자인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서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어찌어찌 홍보를 해서 사람이 많이 온다면 당장 홍보는 성공한 것이지만 반대로 그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면 홍보한 것 이상의 역풍이 불 것이다. 사람이 많이 왔는데 준비가 안되도 문제, 준비가 잘 됐는데 사람이 안와도 문제. 어찌보면 처음하는 행사와 다를 바 없어서 이걸 어찌 홍보해야할지 감이 안잡혔다. 작년에 한 사진이라도 있으면 쓸텐데 그런것도 없고말야.

 나도 본 적 없어서 모르는 걸 좋다! 멋지다! 홍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정보 부서에서 행사장 전체에 와이파이를 설치한 것이다. 정보통신과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과장님, 정보통신과에서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정보통신과가 하신 일을 좀 홍보해도 될까요?" 여쭤봤다. 과장님께서는 경력도 얼마 안되는 직원이 자기가 홍보담당자라고 먼저 여기저기 관심을 갖고 홍보감을 찾는 다는 것이, 심지어 자기들이 고생한 것을 홍보한다는데 기특하셨던 것 같다.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래서 한가지 더 여쭤봤다.          

"그런데..홍보 포스터를 만들려는 데 사내망에 있는 과장님 직원사진을 써도 될까요? 이상한 낙서나 합성은 안하겠습니다."    

      

말을 뱉어놓고 막 두근두근하려는데 즉답이 나왔다. 허락이었다. 그 덕분에 행사 포스터를 만들었다. 어차피 행사가 임박하면서 여기저기 관광과가 만든 행사 포스터나 취재글, 보도자료가 솔솔 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홍보물 하나를 슬쩍 끼워넣기로 했다. 주르르륵 읽다가 어?하고 거슬리게. '잠깐, 방금 뭐 이상한거 있지 않았어?' 같은 느낌이 들 정도를 기대했다.  


                                             "충주 호수축제 장에 와이파이 됨"


이게 다였다. 호수축제를 어디서 하는지, 언제하는지, 뭘 하는지도 적지 않았다.

가령 날짜를 적을 때 년도라든가 이런 것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온라인에서 지금 눈에 띄면 올해행사겠지. 라는 생각. 이것은 철저히 눈에 띄기 위한 것이다. 포스터는 최대한 한눈에 모든 것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을 두번할 분량이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한 것은 본 사람들이 "충주에서 호수축제 하네?"라는 생각을 하는 거였다. 그러려면 최대한 간결해야 하고 또 수많은 홍보물 중에 눈에 튀어야 했다. 그럼 궁금한 사람들은, 여름휴가 때 주말에 어디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제 호수축제를 찾아볼 것이다.

이렇듯 블로그와 페이스북, 매체별 특장점과 역할은 다르다 생각했다.     


충주는 사과가 유명하니까 와이파이 중심에 사과를 넣었다.


공공기관 포스터는 누가봐도 공공기관스럽다. 모범적이고 단정하다. 그런데 거기에 속된 말로 발로 만든 것 같은, 내용도 모양도 허접한 포스터 한장이 나온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지? ‘여름축제라고 지자체 홍보물이 쏟아지는데 그 중에 이상한 게 하나 섞여있어?’ ‘근데 그게 공식 포스터야?’ 충격이 시작됐다. 의도가 먹혔다.          

 작년에 안하고 2년만에 개최한 행사에 10만명이 방문했다. 충주시 인구가 20만명이니까 절반 정도가 온 셈이다. 지역 작은행사로 잊혀질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행사가 성공적이었다. 행사를 준비한 직원들이 칭찬을 받았다. 그 중에 우리 홍보실도 있었다. 홍보가 워낙에 튀고 관심을 끌어야 하는 역할이다보니 들인 수고에 비해 과한 칭찬을 받았다. 포스터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포스터에 등장하신 과장님도 화제가 됐다. 여담으로, 정보통신과장님 성함이 '성낙서'였는데 사람들이 그래서 포스터에 낙서를 한거냐는 농담을 댓글로 달기도 했다.공공기관 댓글창에 드립잔치가 열렸다.



#충주 #포스터 #공무원 #공직 #직장 #직업 #홍보 #마케팅 #페이스북  #적극 #포스터 #다이브 #호수축제


작가의 이전글 충주시는 온라인 홍보를 왜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