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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남식 May 22. 2024

옥수수 털어도 돼요?

충주시 B급 홍보에서 어쩌면 제일 중요한 이야기

 호수축제 성료! 말 그대로 성대하게 완료됐다는 뜻이렸다. 잘 끝났다. 그 와중에 이색홍보도 한 몫 톡톡히 했다. 충주시 페이스북에 관심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다. 충주시 홍보가 과연 이번 한번으로 끝날지, 다음에 계속해서 색다른 홍보물을 올릴지 궁금했을 것이다.나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 이후 후폭풍에 관심을 갖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엌, 충주시 좀 이상한데요'라든가 '담당자 괜찮나요?' 같은.


 공무원이 하는 일은 대개 밖에서 잘 모른다. 직접 현수막을 떼거나, 선거 때 투표용지를 나눠주는 등 눈에 보이는 현장업무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서류로 사무실에서 처리되니까. 일 처리라는 게 중간 과정은 드러나지 않고 결과만 드러나는게 보통이잖는가. 그런데 홍보 업무는 달랐다. 내가 뭐 하나 올리는 족족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홍보가 제대로 된다면 나는 최대한 많이 눈에 띄어야만 했다. 출근하면 돈을 받고 관심을 구하는 자, 진정한 프로 관종인 셈이었다.


 다행히 지난 번 호수축제 홍보물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 불씨를 살리고 살려서 끌고가야 할 기회이기도 했고 동시에 사람들이 뭐하나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은 평온했는데 내가 왔을 때 충주시 페이스북은 여느 공공기관 페이스북 마냥 게시물 하나당 좋아요가 서너개 달리는 한낮에 시골길 같은 한적한 곳이었기 때문에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해서 잘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다음 홍보 대상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우리 과장님이 옥수수를 사온 것이다. 전에 근무하시던 면에서 친해진 이장님이 파는 옥수수를 한 박스 사오셨다고 들었다. 이장님 옥수수 팔아주려는 것도 있고 또 축제 때 홍보실이 칭찬을 받았으니 직원들을 격려해주려는 마음도 있으신 듯 했다. 찐 옥수수 박스를 사무실 한가운데서 개봉하는데 김이 화악 하고 올라왔다. 달콤고소한 찰옥수수 특유 냄새도 끝내줬고 뜨거운 옥수수를 직원들이 하나씩 들고 호호 불어가며 먹는 모습이 무슨 광고 같았다. 무엇보다 옥수수가 정말 맛있었다. 그 전에는 충주 특산물로 사과만 알고 있었는데 이것도 정말 맛있다, 어디 내놔도 밀리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충주가 고향인 나도 그전에는 이런 옥수수를 왜 몰랐을까 싶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후아후아 먹으며 홍보를 하려면 이렇게 실감나게 4D로 해야하는데 속으로 생각하던 차에 문득, 지역 홍보채널이니까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돼야하는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행정기관이 효과적인 시정홍보를 위해 SNS를 한다지만, 충주시SNS가 잘된다면 궁극적으로 충주시민이 이득을 봐야하는 것 아닐까? 그래, 그렇다면 충주 옥수수를 팔아보자, 그래 이건 좀 자랑할만하다 싶었다. 지역 농특산물을 지자체가 홍보해야지 누가 하겠나?


 그러나 내가 옥수수를 그렇게 실감나게 표현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영상으로 찍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별로 재미없었다. 나는 덩치도 크고 뭐든 잘먹게 생겨서 내가 먹으면 변별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농부들이 황금벌판 사이를 사이좋게 걸어가고 그 뒤에 빈 하늘에 허허 웃는 얼굴이 흐리게 깔리는 광고를 만들 생각도 없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옥수수 쳐보면 노랗고 연두색인 옥수수 이미지가 쏟아졌다. "아 전국 옥수수 다 먹어봤는데 진짜 이게 제일 맛있다고!!" 하고 싶지만 누가 믿어줄까? 그전에 내 말이 들리기나 할까? 일단 이 옥수수를 진짜 먹여보자. 그리고 후기들이 나온다면 그 후기들이 홍보를 해주리라 생각했다. 그 당시 개념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입소문 홍보, 즉 바이럴 마케팅을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이걸 누구한테 어떻게 주지? 내가 섭외한 사람한테 주면 일단 연출 같아 진정성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경품 이벤트를 하기로 했다.


  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한다. 커피 한잔, 옥수수 하나 이렇게 깨작깨작 주면 주고도 욕 먹는다. 한 사람당 옥수수 한 박스를 주기로 했다. 받은 사람이 최대한 오래, 여러명과 나눠먹길 바랬다. 그 시간만큼 회자될테니까. 한 박스 안에는 2개씩 소분 포장된 20봉지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20명에게 옥수수 한박스씩을 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위에 보고할 기획서는 따로 만들지 않았다. 홍보물에 그대로 다 들어가 있으니까. 언제부터 언제까지 할거고, 상품은 뭐고, 왜 하는지. 옥수수가 너무 맛있어서 나눠먹으려고, 올 여름 옥수수 못 먹어본 당신을 위해.


 혹자는 경품행사에 부정적이다. 행사 내용이나 제품 자체에는 관심없는 체리피커(상품사냥꾼)들이 상품만 홀랑 털어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나무들은 벌이며 나비에게 꿀을 막 퍼준다. 그러면서 벌과 나비 몸에 꽃가루를 묻힌다. 그렇게 꽃가루 묻은 곤충들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수정을 시킨다. 홍보도 똑같다. 결국 체리피커도 잘 쓰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니까 체리피커도 상관 없었다. 그들이 체리를 따가든 수박을 따가든 홍보만 된다면야.


옥수수 홍보지만, 옥수수 홍보 같으면 안되겠다 싶었다. 어떻게 하면 눈에 띌까만 고민했다. 처음 떠오른 것은 보색대비였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독을 가진 동물들이 오히려 자기를 잘 보이게 하려고 빨강초록과 보색으로 자기를 노출시킨다. 공사장이든 지하주차장도 보면 위험하니까 부딪히지 말라고 검은색, 노란색 빗금으로 눈에 확 띄게 위험표시를 그어놨다. 오케이, 새로 만들 포스터에는 기왕이면 더 잘보이는 빨강초록을 쓰기로 했다. 근데 독개구리랑 비슷하게 하려했더니 색이 너무 강렬해서 색만 보이고 내용이 안보였다. 조금 옅은 빨강과 형광연두색으로 배경이 결정됐다.


  패러디를 하기로 했다. 패러디는 원작을 교묘하게 바꿔 원작과 모작의 간극이 주는 재치를 노리는 수법이다. 노골적으로 말해 패러디란 원작과 다른 부분이 거슬리면서 오는 낯설게 보기효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원작이 검증된 것일수록, 원작이 유명할 수록 그 효과도 좋으리라. 옥수수 어쩌구, 옥수수 털어, 옥수수 턴업 등등 옥수수를 가지고 이런저런 구상을 하던 중 당시 국민예능 무한도전에 국민미남 조인성이 나온 한 장면 캡쳐가 여러번 눈에 띄었다. 조인성이 예능에 나왔는데 깐족거리는 게스트에게 '옥수수 털어도 돼요?'라는 다소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을 예능자막으로 꾸민 장면인데 사람들이 그 장면을 캡쳐해서 이모티콘처럼 쓰고 있었다. 요즘 말로 밈이었다. 그때는 '짤방' 정도라 불리고 있었다. 무한도전이 워낙 유명하니, 조인성도 워워낙 유명하니 이보다 옥수수 홍보에 적합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달리 방법도 없었다. 조인성을 섭외해서 사랑해요 충주옥수수 해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


 그래서 직접 그렸다. 업체에 맡기자니  평소에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관서에 물들어버린 업체가 과연 이걸 해줄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돈이 없었다. 홍보물을 수시로 만들텐데 그때마다 지불할 돈이 없었다.내가 갑자기 하려니 당장 세워둔 예산도 없었고, 당시 내가 예산업무를 잘 모르니 예산을 세우는 절차도 너무 어려웠다. 예산을 세워서 업체에 맡기고 의견을 주고 받고 고치고 하느니 그냥 내가 하는 게 여러모로 속 편하겠다 싶었다. 뭣보다 평소 관공서 포스터를 생각해보면  내가 직접하는 어설픔, 아마추어리즘이야말로 이번 포스의 포인트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품질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담당자 수제 포스터가 기획됐다.  

 



 내가 의도한 포스터란 비록 못했지만 하노라고 했다고 변명하면 마냥 욕하기엔 뭐한, 시험에 비유하면 미묘하게 과락을 넘기는, 요즘말로 꾸안꾸(꾸민듯 안꾸민듯) 콘셉트였다. 충청도식으로 애는 착햐....같은 느낌. 그런데 처음 페이스북 커버를 만들때 썼그림판으로 포터를 그리려니  결과물처참했다. 포스터를 그리려고 직접 선을 그렸다. 얼굴을 그리려 동그라미를 그리니 너무 삐뚤빼뚤했다. 지저분했단 말이다. 그냥 동그라미 도형으로 그렸다. 근데 이것도 뭔가 성의없는 느낌이랄까. 이건 도를 넘었다. 아니 넘지 못했다고 해야하나. 이걸 가지고 하노라고 했다고 하면 욕 먹을 것 같았다. 못했어도 뭐라 하기 애매할만큼은 성의있어 보여야하는데 이건 내가 봐도 좀 꺼려졌다. 그런 점에서 파워포인트는 형태나 색감이나 형태가 좀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파워포인트는 그밖에도 장점이 많았다. 파워포인트는 그림 위에 다른 그림이나 도형, 선을 얹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하다 틀리면 고치기가 좀 쉬웠다. 여러 겹 그림을 겹치는 레이어구조라고 할까? 그러다보니 그려놓은 선이나 도형 위치를 내가 마음대로 옮긴다거나 색을 바꾸는 등 수정이 편했다.  


 파워포인트를 고른 이유에는 군부대에서 파워포인트를 많이 썼던 것도 있다. 부대에서 지도에 이것저것 표시하려고 도식을 그릴 때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인 파워포인트만 사용할 수 있던 탓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데 사정은 충주시청도 똑같았다. 파워포인트에서 원을 크게 하나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마한 타원을 그려 귀를 붙이고 삼각형을 삐딱하게 붙였다. 얼굴이 됐다. 몇번 뚝딱뚝딱해보니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절세미남 조인성이 완성됐다.


 홍보하면 또 중요한 것이 카피 아니겠는가? 여기서도 패러디를 하기로 했다. 옥수수 털어도 돼요?라고 묻는 장면에 '닦지 말고 씻으세요 룰루'라는 비데 광고를 섞었다. 옥수수, 털지말고 잡수세요. 올 여름 다가도록 옥수수 못 먹은 당신을 위한 뽀너쓰.  이후에는 포스터에 들어갈 내용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글자수를 뺐다. 단어를 바꾸고 불필요한 숫자나 표현을 삭제했다. 잘 보이게 하려고 글자 간격이며 폰트를 계속 고쳤다. 폰트는 파워포인트 기본폰트를 썼다. 저작권은 무서운거니까.


 포스터를 완성했다. 글자로 적으니 몇줄 안되는 것 같아 막 그린 것 같지만 처음 그릴 때는 하루 종일 걸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그려놓고 이게 맞나 고민하는 시간이 좀 많았던 것도 같다. 여하간 이제는 다 만든 포스터를 언제 올릴까 고민했다. 근거는 없이, 그냥 내 생각에 사람들이 4~5시 쯤 되면 슬슬 일하다가 뻐근해서 딴짓도 좀 하고 퇴근하려고 꿈지럭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때 올렸다. 일에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 지나고 한숨 돌릴 때, 그리고 이어서 퇴근하는 길, 퇴근해서 보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나도 게시물을 등록하고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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