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이 '또라이를 찾으라' 하셨어" 라고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지방공무원은 대개 매년 1월, 7월이 인사시즌이다. 충주시청도 비슷하다. 갑작스런 휴직, 파견으로 인한 수시 인사도 있긴 있지만 대규모 부서이동, 진급은 역시 1월, 7월 정기인사다. 인사시즌이 다가오면 조직 전체가 살짝 들뜬 분위기다.
2016년 7월 무렵에도 비슷했다. 그 즈음 나는 업무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리를 옮길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유로운 관망모드였다. ‘오, 이번엔 누가 진급을 했네?’, ‘누가 어디로 가는구나’라며 여느 직원들이 그렇듯 인사발령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 부서에는 누가 새로 오나’하고 들여다보다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인사발령문에 내 이름이 있었다. 보통 2년, 짧으면 1년 반 정도는 한 업무를 담당해야 업무가 바뀌는 게 당시 분위기였기다. 그런데 정확히 1년만에 인사가 날줄이야.
“창조정책담당관 조남식, 홍보담당관으로”
홍보담당관이라고 소속을 밝히면 사람들이 날더러 홍보담당관님이라 부른다. 그런데 부서 이름이 홍보담당관이다. 홍보담당관은 홍보담당관이란 부서의 부서장 직함이기도 하다. 이게 맞나 묘한 의구심이 들지만 홍보과장님을 홍보관장님이라 부르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그냥 공식문서에 지칭할 때가 아니라면 과장님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어색하므로 이어지는 글에서는 홍보실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어차피 우리끼리도 홍보실이라 부른다. 여하간 홍보실로 발령나고 나는 최초로 충주시 SNS를 총괄하게 되었다.
최초? 멋진 말이다. 다만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그 전에도 충주시는 페이스북, 네이버블로그, 다음 블로그, 서포터즈 홈페이지,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 참으로 많다. 그런데 이를 한 사람이 관리하지 않고 직원A가 페이스북, 직원 B가 블로그 하는 식으로 담당이 나뉘어있었다. 각각 직원에게 SNS는 업무 우선순위가 낮았기 때문에 페이스북은 직원A의 7번째 업무, 블로그는 직원B의 5번째 업무 정도되는 플러스 알파같은 업무였다고 한다. 필수업무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우선순위에 밀려서 오히려 기억날 때 하나씩 소식을 올리고 들여다보는 것도 어지간한 성실함으로는 어려웠을 듯 하다. (그럼에도 꾸준히 관리해와서 공공기관 지자체 중에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는 전국 지자체중 중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운영되어오다가 “SNS 그냥 한명이 다 해!”라는 지시에 내가 처음으로 SNS를 죄다 가져다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전에 없던 충주시 SNS 총괄이 되었다.
총괄이란 말은 꽤 매력적이다. 굉장히 권한이 많아보이고 능력있어 보인다. 적어도 그 분야에서 꽤 전지전능한 느낌이다. 그러나 대부분 실무 현장이 그렇듯 현실은 담당자가 1명이라는 소리다. 굳이 예를 들면 "충주시 페이스북 이거 누구한테 물어보면 되요?"하면 "조남식"이요. "충주시 블로그 누구한테 물어보면 되요?"하면 "그것도 조남식이요."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충주시장이었던 조길형 시장님(지금도 충주시장인 조길형 시장님)은 SNS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 SNS를 그전부터 강조해오다가 이번부터 온라인 홍보, 소통에 좀더 무게를 두기로 하시며 파격적인 무언가를 원하셨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SNS를 총괄하여 전담할 사람이 필요했고 홍보실은 “또라이를 찾아라”는 시장님의 특명에 따라 또라이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시장님의 맘속에 충주시 최초의 공식 또라이가 됐다.
한동안 ‘어쩌다 뭐뭐’라는 말이 유행했다. 살다보니 시간에 떠밀려 생각지 않게 지금 처지가 됐다는 뜻인데 이런 표현에는 미숙하고 어설퍼도 괜찮다는 힐링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런데 나는 시간에 떠밀리고 우물쭈물 할 틈도 없이 정말 하루 아침에 SNS담당자가 되었다. 공무원 인사가 아무리 순환업무(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용어로 순환하자면 뺑뺑이랄까)라지만 어쩌다가? 아, 나 또라이였지. 무려 조직이 인정했다.
또라이를 사전에 찾아보면 ‘생각이 모자르고 행동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적혀있다. 그런데 시장님이 혼을 낼 게 아니라면 직원 중에 굳이 저런 사람을 찾으라고 했을리는 없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또라이는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을 벌이는 사람 쯤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새 업무담당자로 찾은 ‘또라이’인 만큼 남들과 다른 기발함과 과감한 추진력을 기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업무에 제약 없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새로 부서 가자마자 과장님께서 "시장님께서 부산경찰을 잡으라하셨다"였다. 부산경찰, 그때 부산경찰은 지금으로 치면 BTS같은 존재였다. 듣고 딱히 부담스럽진 않았다. 워낙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싶었다.
다만 걱정스러운 사실은 내가 이제껏 SNS를 해본적 없는 사람이었단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충주시SNS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충주에서 태어나고 자라 충주시청 공무원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지. SNS담당자이기 이전에 충주시청 직원으로서 마음한켠이 뜨끔하긴 했다. 그런데 사실 이게 큰 잘못은 아니지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SNS 안하는 사람은 많다. 뉴미디어 시대니 유튜버가 어린이들 장래희망 1위라는 소리가 나오는 시대인데도 주변에 SNS 하는 사람보다 안하는 사람 찾기가 더 쉬운 이유는 뭘까?
바쁘다. 각박한 현대사회에 SNS 할 시간은 따로 없다. 우리는 출근해서 돈도 벌어야하고 운동, 영어공부 같은 자기계발도 해야되고 취미생활도 해야한다. 주말이면 가끔은 여행도 가야하고 경조사도 빠질 수 없다. 게다가 연애, 결혼, 육아까지 가면 먹고살기 바빠서 SNS를 할 시간이 없다.
심지어 SNS 라는 게 어렵다. 심지어 시작부터 어렵다. SNS를 해보려고 하면 가입부터 막혔다. SNS와 함께 태어난 세대는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20대 후반인 내게도 SNS가입은 은근 복잡했다. 당시 나의 가장 최근 SNS는 싸이월드였다. 그런데 새로 나온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가입부터가 녹록찮았다. 그래도 사이트가 묻는 것에 성실하게 대답해서 어찌어찌 가입을 했다. 그런데 하는 것도 어렵다. 피드는 뭐고 담벼락은 뭔가. 리트윗은 뭐고 트윗은 또 뭐란 말인가? 저 사람이 쓴 글에 좋아요는 왜 눌러야 하는건가? 생소한 개념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재미가 없다. SNS가 재미있으려면 어느 정도 게시물이 쌓이든 온라인 인맥이 쌓이든 해야 꾸미는 재미, 소통하는 재미가 있을텐데 처음 만든 SNS는 너무나 황량하다. 처음하는게 블로그라면 레이아웃이 후지고 페이스북, 트위터라면 인맥이 후지다. 처음에 추천 친구도 다 아는 사람이다. 맨날 보던 사람을 굳이 SNS에서 따로 볼 필요가 있던가? 고민하다 보면 시간은 간다. 그 와중에 바쁘다.
따져보면 SNS시대라고 하지만 SNS 안해도 잘 먹고 잘 산다. 그러다보면 굳이 SNS를 해야할까 싶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순간에도 ‘SNS를 해야한다, SNS 이렇게게 해라’ 하는 책들이 계속 쏟아질까? 그런 책들이라면 SNS를 지금 당장 안하면 큰일날 것처럼 얘기한다. 장담컨대 SNS안해도 망하진 않는다. 다만 SNS를 하면 안할 때 얻지 못할 여러 기회를 얻을 수 있다. SNS를 한다고 당장 인플루언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인생을 좀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다. 물론 꾸준히 한다면 파워블로거나 페북스타, 인기 스트리머 같은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SNS담당자가 됐으니 이제 출근해서 손가락 빨지 않으려면 SNS를 당장 시작해야 했다. 심지어 처음 내가 SNS를 만든 것도 아니고 이미 있던 채널들을 와락 떠맡았으니 달리던 차의 핸들을 갑자기 넘겨받은 셈이었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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