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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Nov 23. 2020

땅따먹기

회사 어른들의 땅따먹기

회사에서 오늘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다. 엄청난 반항심을 억누르고 또눌러 약간만 표출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음이 후련하지 않다. 나도 이유불문 이겨야만 기분이 좋아지는 땅따먹는 어른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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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업무는 전산실의 서버운영이다. 대한민국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큰 공장에서 서버를 운영한다. 이 것을 다시말하면 드넓은 사막에서 드문드문 난 한그루의 나무를 보살피는 일. 오늘은 나무 한그루 심으려다 선배에게 갑질을 당했다. 


서버는 회사 곳곳에 설치된다. 비싼 광케이블을 몇 km에 걸쳐 쭉-쭉- 깔아댈 순 없기에 회사 부지의 공정마다 전산실이 있다. 오늘 설치할 서버는 연구소에서 AI(인공지능)를 개발하기 위한 용도였다. 여러 모델이 들어가는데, 그 중 하나를 내가 맡은 터라 개발자 겸 전산실 운영자로 겸사겸사 관련 잡무들을 처리해주고 있다. 


이 서버가 설치될 전산실은 같은 부서의 다른 파트가 주로 사용하는 전산실이다. 그래서 미리 해당 담당자에게 내용을 유선으로 공유하고 설치 위치를 확인 받았다. 빠른 대응에 감사하며 위치를 확인하러 갈 찰나, 그쪽 파트장이 "AI는 안돼"라고 단언하신다. 아니, 무슨 법원 판결이란 말인가.


그래서 네트워크 백본도 거기에 있고, 그 공정에서 데이터를 받아쓰기에 거기에 설치해야 된다고, 더구나 한 대인데 안될까요? 라고 되묻자 "안돼" 라고 고등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그럼 AI 서버는 엄한 곳에 설치해서 비싼 광케이블로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데요... 라고 반문하자 "그건 너 사정이고"


이런 무슨 x. 동갑내기나 년차가 비슷한 사람이었으면 싸가지가 없다고 분노를 얼굴에 내뿜을 뻔했다. 안 되는 이유는 없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할따름. 회사의 발전을 위해 여러 부서에서 협업하여 개발중인 서버가 대체 어디를 침범했단 말인가. 그 전산실은 우리 부서의 관할이지, 그 파트의 관할은 아니다. 


이 분이 파트장에 즉위하신 지는 이제 고작 서너 달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후배사원들을 챙겨가며 '차 한 잔 마시고 가' 라며 인심을 베푸셨는데, 대화하지 못한 서너 달 사이에 폭군이 되어있었다. 자신의 발이 닿는 곳은 자신의 땅. 그곳을 넘보는 자는 단칼에 용서하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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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땅따먹기는 아이들보다 우습다. 아이들은 재밌게라도 하지, 어른들은 모두가 다 짜증에 섞여 땅에 선을 긋는다. 비가오면 땅에 그린 선들이 사라지듯 논리 없는 직책자는 사라지기 마련. 뼈아픈 일침을 직접 꽂아드리진 못하지만, 땅따먹기에 중독된 어른들이 권위를 가진 이상 회사의 발전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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