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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Dec 28. 2020

월 157만원으로 살고 싶었다

#서른고비

계란 후라이로 아침을 때우며 뉴스를 보고, 지하철에선 무선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하루 커피 한 잔을 야금야금 마시고, 분기에 한 번 계절에 맞는 옷 한 벌을 쇼핑을 해야 하며, 집에 돌아와 두 발 쭉 뻗고 푹신한 잠자리에 드는 일. 이 일의 월급이 182만원이라면?




2017년 2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드디어 내게 맞는 일을 할 수 있다니.' 비록 전공은 아니었지만 관심 있던 분야의 한 회사에 당당히 서류를 합격한 탓이다. 당장 중국에서 9개월 넘게 일하던 PLC 기술직을 접고 한국으로 왔다. 


면접 당일. 회사 대표의 첫 마디는 정확히 이랬다. "와아오님. 안녕하세요. 이력서를 너무 깔끔히 잘 써주셔서 어떤 분일지 궁금했어요." 아싸!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서류를 통과한 13명 중 으뜸이라는 소리 아닌가. 역시 기획 일에는 이런 센스가 필요하지.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13명의 면접자 중 11명이 최종합격을 했는데, 떨어진 두 명 중 한 명이 나였다. 직장은 붙고나서 퇴사하는 거라던데 너무 빨리 손절했다. 스물네 살에 한 번,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두 번이나 퇴사를 우습게 봤다. 


그 후로 고된 삶이 이어졌다. 모아둔 돈이 바닥을 치기 직전, 내 간절한 기도는 이랬다. "부디 월 157만원이라도 받고 평범하게라도 살고 싶어요." 애매한 스펙에 애매한 경력 탓에 일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경력지원과 신입지원 두 곳 사이에서 방황했다. 


급해진 마음에 결국 이곳저곳 회사든 공장이든 알바든 이곳저곳 다 지원했고, 의외로 연락오는 곳이 많았다. 몇 곳 면접을 보고, 그중 몇 곳을 합격하면서 알게 됐다. '내가 어디서든 일할 각오가 되어있다면 일자리는 있지만, 만약 아무 곳이나 간다면 또 불행한 퇴사를 할 것이다.'


결국 내 기준에 '괜찮은 회사'를 가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택했다. 설상가상으로 집안 사정이 겹쳐 4개월 동안 쓰리잡, 포잡을 뛰어야 했고, 장염에 걸렸어도 일을 해야 했기에 내 소원은 간절해졌다. "부디 월 157만원이라도 받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하루에 8시간, 주 5일, 주휴수당 포함. 이런 이상적인 알바라면 내년에 받게 될 최저임금은 월 1,822,480원으로 정해졌다. 182만원이 많은가 적은가.


그 물음에 제각각 논리를 펼친다. 이렇기에 적다, 저렇기에 괜찮다. 결국엔 사람by사람으로, 근로자의 상태에 따라 182만원이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와 같이 아직 젊은 2030이고, 사지가 멀쩡하며, 하루에 한 시간 이상 SNS를 보고, 계란후라이와 커피를 먹고, 무선이어폰를 쓰며, 분기에 한 번 쇼핑을 한다면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 수준을 정하고,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 182만원이 편의점 근무시간 8시간을 보상하는 게 아니라, 내 생활 24시간을 지켜주는 제도적 안전망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이 글은 2017-18년도를 회상하며 썼습니다. 제목이 '살고 싶었다'로 과거형인 이유죠. 당시 알바를 하면서 치열하게 취업준비를 했습니다. 22시-08시 야간 알바를 끝내고 지방으로 내려가 면접을 보고, 다시 올라와 출근을 하고. 그렇게 2019년 3월, 제 기준에 '좋은 회사'에 합격하여 2년 남짓 보람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2편 : 월 157만원으로 살기 싫어졌다 (https://brunch.co.kr/@choncreate/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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