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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Dec 31. 2020

월 157만원으로 살기 싫어졌다

#서른고비

월 157만원으로 살고 싶었다라는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choncreate/17) 당시는 2017-18년. 급한 퇴사로 백수가 되자 최저임금이라도 받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집안사정으로 야간 14시간, 주7일, 4개월을 일하고 나니 월 157만원으로 살기 싫어졌다.




장염에 걸렸었다. 편의점 평일 야간, 주말 야간, 해외 마케팅까지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밥은 커녕 빵 사먹는 돈도 아까워 과자로 주린 배를 채운 탓이다. 정말 고맙게도 평일 오후 알바생이 "형 너무 힘들어보이시는데 오늘 하루라도 쉬세요." 대타를 뛰어줘서 4개월 동안 딱 하루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필 그 때, 편의점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수트에 청롱한 눈빛. 군대 훈련소 동기다. 해병대를 나온 터라 훈단시절 동기는 정말 각별하다. 그 친구는 단 번에 나를 알아보고 반갑다고 인사를 해주었지만 나는 반가울 수가 없었다.


대리가 되었다느니, 여자친구가 옆 오피스텔에 살아서 만나러 왔다느니, 직장이 우리집 근처라는 사실에 또 만나자는 인사가 거북할 즈음 담배 한 갑을 계산해주면서 동기는 손님, 나는 알바생. 그 위치가 확연히 드러났다. 남의 인생과 비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비교가 자연스러웠다.


주말 알바는 대형병원 안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대학교 친구가 근무하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방사선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친구. 1학년 때 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야식을 먹고 그런 추억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 친구가 다른 대학 친구들에게 '와아오 만났어!'라고 소식을 전한다고 했을 때, 창피함에 그러지 말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도리어 나도 친구들 소식이 궁금하다며 SNS로라도 연락하고 싶다는 괜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 친구는 내가 자퇴하는 순간까지 응원해주던 정말 좋은 친구다.)


자괴감을 꾹 참고 몇 개월이 지나보니 월 157만원이 아니라 200만원 이상 생활비가 생겼다. 나는 과자 대신 국밥을 먹었고, 잠 대신 책 한 권을 손에 쥔 채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어느정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게 되자 나는 월 157만원으로 살기 싫어졌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 한다. 돈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잔고가 바닥이 나면 최저임금으로 살고 싶고, 그게 채워지면 조금 더 여유 있는 수입을 원한다. 만족은 순간이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나 역시 3년이 지난 지금, 좋은 직장을 다니며 퇴근 후 이것저것 부수입을 만들고 있다. 만약 내가 목표하는 수입이 달성 된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그대로 살기 싫어질 테고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에 혹해 조금씩 더 수입처를 확대해 나갈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남과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수도 없고, 사람을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으니 자괴감이든 창피함이든 어찌 통제 할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살아있는 한 '평범한 하루'의 기준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른 고비를 넘는 중. 서른 살이 되면서 달라진 생각, 감정, 생활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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