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고비
세상엔 거짓말들이 넘쳐난다. 어쩌면 거짓말 중 일부는 너무나 진짜 같아서 자신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만리장성이 보인다거나, 인간은 평생 뇌를 10%만 사용한다는 말은 서너 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러 온다는 말과 같다.
나는 산타할아버지를 꽤 일찍부터 믿지 않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 조차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매년 12월 25일은 내게 성탄절, 아기 예수의 탄생과 일종의 공연하는 날로 인식되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순록을 처음 본 날 "루돌프는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엄마의 거짓말로 민망했던 적이 있다. 급식에 요플레가 나왔는데 나는 여느 때처럼 뚜껑을 열심히 핥아먹고 있었다. 그걸 본 짝꿍이 "야 왜 그렇게 핥아먹어!"라고 말하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뚜껑에 영양이 더 많대!" 짝꿍은 한참 웃더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반박했다.
반박은 이랬다. 교실까지 요플레를 들고 올 때 흔들려서 다 섞일 텐데, 뚜껑에만 영양이 더 많다는 게 말이 돼? 이 말을 듣고 단 번에 알아차렸다. 뚜껑에 붙은 요플레까지 어떻게든 먹이려는 우리 엄마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제조 과정에서 다 섞어 만든 요플레가 어느 특정 부분에만 영양이 더 많은 게 터무니없는 말이다.
이렇게 굳게 믿고 있던 거짓말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단계가 높아진다. 서른을 막 넘은 어제도 하나 당했다. 어떤 재테크를 하고 있는데 13일에 Big News가 발표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나름 회사 대표가 미리 공개한 정보인 데다, 기술력 하나만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터라 일찌감치 호재 대응을 준비했다.
그리고 대망의 13일. 며칠을 준비했기 때문에 든든한 마음으로 웹사이트를 초단위로 새로고침 하면서 호재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뮤니티들을 둘러봤을 때 이 호재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아주 크게 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심지어 '퇴사하면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투자에 성공한 퇴사 스토리까지 그리고 있었다.
"Big News : 어쩌고 저쩌고" 글이 뜨자마자 어?! 아니겠지. 이게 빅뉴스는 아니겠지. 몇 초를 생각하다 서둘러 호재를 준비했던 모든 걸 빠르게 처리했다. 이슈는커녕 나조차 이게 대단한 일인가 의문이었다. 동종 업계라 기술적인 내용은 쉽게 이해했지만, 그냥 News가 아닌가! 어디서 Big을 붙여!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며칠이 몇 초만에 사라졌다. 허무하기 다름없지만, 출근을 생각하면 나는 매일 거짓말에 갇혀 사는 셈이다. 스무 살부터 일찌감치 직장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출근만 10년. 어느 회사를 가든 거짓말에 속아 입사했고, 거짓말을 믿으며 다니게 된다.
가족 같은 회사는 정말 가족이 경영해서 객관적이지 못하고, 창의적 인재를 뽑는 곳은 불합리 개선 측면에서만 창의적어야 하며, 형식보다 행동을 중요시하는 곳은 상급자의 소환이 잦아 진짜 발로 뛰는 행동을 해야 한다.
선배들도 처음에 '나는 격식 같은 것 안 차리는 게 좋아. 서로 편하게 지내자.'라는 말을 건넨다면, 그 말을 한 것 자체가 '격식'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기에... 편한 척을 하면서도 격식에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오늘도 인스턴트커피를 휘저으며 저 거짓말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고민할 예정이다. 하지만 요플레에서 호재와 직장으로 이어졌듯, 이 거짓말을 빠져나가면 다른 거짓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