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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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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Feb 08. 2021

5원에 살기로 했다.

#서른고비

띠링띠링-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설날이니 쌀 받으러 와~"라는 친절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사회복지사. 그들은 복지관이고 동사무소고 교회고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설날이면 복지사들이 건네주던 쌀과 김치를 먹고 자랐다. 그게 누구 지은 밥이던 나는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른이 되고 가장 달라진 게 뭐냐 물으면, 당연히 돈이다. 1만 원이면 정말 재밌게 놀 수 있던 나이도 있는 반면 지금은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이면 끝이다. 그것만으로 감질날 땐 식당으로 가서 15000원을 쉽게 긁는다. 아마 다시 10년이 흘러 40대, 그리고 50대가 되면 돈은 또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돈의 가치는 고정되지 않는다.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불과 3년 전, 나는 편의점에서 가장 값싼 500원짜리 물이 너무 비싸고 아까워서 몇 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적이 있다. 문자로 오는 빚 잔액이 물보다 귀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으로 돌아가도 비슷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포켓몬스터 딱지가 유행했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은 딱지로 바닥을 연신 두들겨 팼고, 나는 그 소리를 웃어넘겼다. 그러다 친구들끼리 모두 모여 딱지를 칠 때 나 혼자만 멍하니 손을 만지작 거리게 된 순간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때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곧장 문구점으로 달려가 쭈뼛쭈뼛 물건을 찾는 척하며, 딱지 하나를 슬쩍 옷 안에 숨겼다. 혹시라도 딱지가 떨어질까 봐 엉거주춤한 자세로 문구점을 기어나가자 문구점 아저씨가 불러 세우셨다. 


"너 손 한 번 내려봐!" 얼음이 된 나는 딱지를 떨어뜨렸고, 아저씨는 이름이 뭐냐고 물으셨나, 그랬다. 울면서 집으로 뛰어간 바람에 아저씨의 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뒀기에 그날 이후로 (진짜) 친구들 사이에서 돈 때문에 불편한 적은 없었다. 


나는 3년 전 500원의 물을 극복한 직후 바로 유니세프의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어른이 된 나는 물 한 모금마저 참을 수 있었지만, 어릴 때의 나는 딱지 하나 조차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게 어린이다. 어린이의 세계에는 돈도, 돈의 가치도 없다.




띠링띠링-

휴대폰이 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반갑습니다. 후원자님~"이라는 친절한 말투가 들려왔다. 아프리카에선 선 500원이 아니라 5원이 없어서,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물을 못 마신다는 내용이었다. 단 5원이면 흙탕물을 깨끗한 물로 정화하는 알약이 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한 나는 정기후원금을 2만 원에서 3만 원으로 증액했다. 어릴 적 내게 오던 밥은 복지관, 동사무소, 교회 뒤에 감춰져 있던 후원자들이 지어낸 밥이란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서른의 나에게 요깃거리도 되지 못하는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2000명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는 5원에 위대한 발명가의 알약을 샀고, 아이들은 5원에 살기로 했다. 



* 유니세프를 비롯한 각 후원사는 매년 후원금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일부는 운영비로 쓰이는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후원자들과 연결하고, 개인 후원자가 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후원사들은 월 1만 원부터 정기후원을 할 수 있으며, 환경 / 아동 / 질병 등 후원자가 지원할 곳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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