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 어떤 각오로 새해를 맞이했나? 목표/다짐보다 중요한 게 각오다. 예를 들어 '뱃살이 가려지지 않으니 살을 빼야겠다.'가 아니라 '10kg를 뺄 때까지 햄버거를 보지도 않겠어.' 이런 수준이다. (나는 '부수입 300만 원을 만들기 전까진 딸기를 먹지 않겠어라는 각오를 세웠다가 아직도 딸기를 못 먹고 있다.)
강원도 정선.
이제 이틀 뒤면 2021년이다. 1월 1일 오전 11시, 온갖 계획과 목표와 다짐들이 SNS에 연달에 올라온다. 대개 31일은 늦게 자기 때문에 오전 11시도 빠르다. 만약 1일 이른 아침, SNS에 새해 다짐을 업로드하는 사람이 있다면 첫 기상미션은 성공한 셈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1월 7일이 됐다. '작심삼일 어쩌고...' 하는 글들이 맛있는 음식 사진과 함께 인별그램 피드에 올라온다. 그러면 거기에 또 덧글이 달린다. 맛있으면 살 안 쪄라든지, 나도 어떻다느니, 아직 음력으론 새해가 아니라는 말들로 당사자의 기운을 북돋는다.
평소에 그렇지 않던 친구들이 진심으로 격려를 보내는데 어찌할 수 있나. 큰 공감을 하며 새해 다짐을 묵살하고 먹는다. 설날에는 마지막이라며 더 먹는다. 그리고 설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면 '2021년 새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한 철 지난 제철음식 같아서, 굳이 다시 집착하지 않는다.
곧이어 3월, 헬스장에서 신규회원 절반이 사라진다. 남은 사람들은 몸매를 더 가꾸고, 내년에도 가꿀 테고, 나아지는 몸을 보며 진정한 헬ㅊ이 된다. 사라졌던 이들이 다시 그 헬스장을 찾는다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으로 바뀌어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떻게 새해 다짐을 성공한 것일까?
내 방 한쪽 벽엔 메모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메모엔 하루 계획표, 목표나 다짐, 명언, 포기한 것들, 나중에 할 것들, 영단어를 정리해서 써놨다. 그럼 하루에 한 번은 보겠지 / 하루에 한 번은 다짐하겠지 싶었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그냥 허울 좋은 벽이다.
다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계획이나 다짐들이 실패할 때마다 괜히 '벽 메모도 업데이트해야지' 하는 강박관념이 생겨서 쳐다보지도 않는 메모를 덧붙이게 된다. 그때마다 업데이트 날짜를 함께 적어두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덧붙이는 주기가 길어졌다.
2020년 3월부터 시작하여 총 9개월. 처음엔 하루, 삼일마다 업데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엔 3주나 한 달이 지나서야 업데이트를 한다. 그만큼 무리한 계획은 세우지 않고, 게으름에게 양보할 여지도 남겨둔다. 내가 귀찮아하는 게 무엇인지, 관심이 적은 게 무엇인지도 이성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헬ㅊ들도 마찬가지다. 헬스장을 몇 번 가다 보니 꾸준히 가는 것이고, 운동법을 수차례 바꾸다 보니 자기에 맞는 운동법을 찾은 것이다. 독해지자. 목표나 다짐 따위론 2021년이 달라질 수 없다. 작심삼일이 반복되더라도 다시 시도할 각오를 장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