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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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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Mar 16. 2021

생일에 관하여

#서른고비

내 생일은 수줍게 찾아온다. 요즘은 다들 카톡이니 뭐니 가만히만 있어도 선물이 들어온다는데, 내 생일은 새벽에 잠깐 내린 눈처럼 아는 사람만 알고는 지나간다. 스물일곱, 생일을 지웠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 때가 있었다. 서른 평생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꼽으라면 스물일곱 생일을 꼽는다. 생일 5일 전, 서류를 내고 간단한 면접을 본 뒤 꽤 유명한 중견기업에 입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너무 쉽게 합격한 탓에 얼씨구나! 좋아할 테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첫 출근 날부터 틈만 나면 밖에 나가 전화를 하고, 과장님께 급여 테이블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함께 입사한 동기는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카풀까지 해줬건 마, 나는 그 동기의 얼굴이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눈 앞에 '압류'가 걸려있었다. 당장 며칠 뒤까지 빚을 상환하지 않으면 본가를 압류한다. 급여를 압류한다. 그 말에 모든 일이 안중에 없었다. 그럼에도 생일은 기어코 찾아왔다. 생일 하루 전, 제발 '내일 아무한테도 연락 오지 않게 해 주세요.' 빌었지만 통 연락도 없던 친구들까지 축하를 보내왔다.


그걸 무시할 순 없어 고맙다는 짧은 답장으로 빠르게 세상에서 벗어났다. 생일은 대체 왜 내가 힘들 때도 꾸역꾸역 찾아와 나를 세상으로부터 더 고립시키는 것인가. 친구들이 잘 지내냐고 물으면, 둘러대기는 커녕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압류'인데 내 밖은 온통 '생일'인 것이다. 그렇게 끔찍한 하루는 회사에서도 이어졌고, 나는 압류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인생에서 생일을 지웠다. 그럼에도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은 기억을 하곤 전화를 준다. 그래서 나는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면 그만'이라는 말로 넘어간다.


세상에 태어나 불과 27년 만에 태어난 날이 지워진 셈이다. 모든 시간은 역사가 되고, 기록되지만 적어도 내 소유의 내 생일만큼은 내가 정하고 싶다.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날 부모님이 얼마나 기쁘셨을지 짐작이 가는가? 그렇지 않다. 대체 내가 태어난 날의 어떤 기억을 가지고 기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서른이 되며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다만 경제적 독립이라든지, 연애나 결혼을 기념하고는 싶다. 그런 날들은 1년이 지나 돌아올 때마다 그 날의 짜릿한 기분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내 생일은 언제나 새벽 눈처럼 찾아와 아무도 모르게 떠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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