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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May 10. 2021

천 갈래로 펼쳐질 삶의 길

다섯 스승에게 전하는 인사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있다. 나는 성인이 된 후로 스승을 단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스승이 남겨준 것이 큰데, 나는 행색이 초라했다. 대학 중퇴와 대기업 퇴사를 거쳐 압류를 코앞에 둔 상황까지 20대의 5월은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SNS상에선 2013년부터 남들보다 빠르게 'YOLO'를 외쳐댔지만, 사실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스승을 당당히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으니. 


2018년, 압류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아등바등 살기 시작한 것이다. 장염에 걸리면서까지 쉬는 날 없이 쓰리잡을 뛰던 던 의지는 일종의 답례였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나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준 사람들에게 '나는 잘 살고 있노라고' 외치는 표효와 같았다. 




솔직하게, 나를 가르친 선생님은 많지만 스승이라 부르고 싶은 분은 다섯 분 밖에 없다. 다른 분들은 그들도 사람인지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를 포함한 몇 친구들에게 상처를 안겼다. "요즘 월세 사는 사람이 어딨어?!"라는 말은 판자촌에 사는 나를 '월세 조차 못 사는 놈'으로 만들었고, "저 애랑 놀지 마라"라는 말은 도대에 어떤 생각으로 입 밖에 꺼내신 건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참 스승 중 한 분은 초등학교 3학년, 항상 비닐봉지에 반찬을 싸서 주시던 선생님이다. 점심시간마다 교실에서 배식을 하고 나면 항상 반찬들이 남았었는데, 그대로 버리긴 아깝다며 여러 봉지로 나눠 담아 몇 아이들에게 나눠주셨다. 덕분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내게는 급식 메뉴가 누구보다 중요해졌다. 하물며, 돈이 없어 소풍을 가지 못하자 선생님은 사비를 내어 챙겨주시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분은 초등학교 6학년 때도 담임선생님이 되셨는데, 내가 전교회장이 되자 진심 어린 걱정과 더불어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머니회와 전교 부회장에게 가난하다고 무시를 여러 번 당했지만, 그럼에도 스승님이 계셨기에 졸업 연사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스승은 복지관 선생님이다. 동네 복지관에서 수학과 사회 과목을 학원 개념으로 운영했었다. 하지만 겨울방학이 되자, 복지관이 공사를 하면서 세 달 가량 문을 닫게 되었다. 여행은 고사하고, 학교와 복지관 외에 갈 곳이 없던 나에겐 타격이 크게 다가왔다. 그걸 아시는 건지, 수업을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공사 하루 전, 칠판에 주소를 적으셨다. 서울시 송파구 **동 **번지. "내일부터는 여기로 와." 자신의 집으로 아이들을 불러 공부를 이어가셨다. 나는 할 것도 없거니와, 수학 공부에 푹 빠져있던 시기였던 터라 즐거운 마음으로 선생님 집을 들렸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복지관 선생님이 계셨기에 나는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세 번째 스승은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다. 과학을 가르치셨고 굉장히 엄하셨다. 매일 숙제를 내주셨고, 매주 시험을 치렀다. 매달 말일, 학원비를 내는 날이면 나는 학원비 봉투를 책 사이에 끼워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를 최대한 죽이려 애썼다. 학원비는 20여 만원이지만 학원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20,300원 정도로 무려 90%를 할인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학원이 이사를 하게 되어 거리가 멀어지자, 내 손에 5천 원을 쥐어주시며 "계속 꼭 와라"라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나는 4년 동안 다닐 수 있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과학만큼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나머지 두 분은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중학교 1, 2학년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눈물은 흘려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고, 고등학교 선생님은 '열심히 하면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렇게 나의 참 스승은 내가 자라는 길목마다 나타나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다. 단순히 돈을 떠나서 나의 먹을거리와 시간을 채워주셨고, 노력과 희망을 놓지 않게 해 주셨다. 이 값진 보물들을 2018년, 압류를 겪고 나서야 능력껏 쓰기 시작했다. 쓰리잡을 뛰면서 취업의 문을 두드린 결과 대기업에서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단체 세 곳을 통해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블로그와 사업 준비까지 역량을 확대해 나가고 있으니, 삶이란 게 고난과 행복 사이를 요동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오늘 읽은 책 <홍정욱 에세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문 앞의 한 줄기 길, 산자락 나서자 천 갈래 길이 되더라는 고운(孤雲). 천 갈래로 펼쳐질 삶의 길을 고민한다." 이 말처럼 나에게는 여러 방향으로 삶의 길이 펼쳐져 있다고 자신한다. 나에게 삶의 길을 제시해준 스승 다섯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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