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별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예전에 쓴 <사람들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에서 언급한 SNS 지인이 입양을 고려하고 있다. 간략히 다시 언급하자면 "교통사고 이후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신 지 적어도 15년이 넘은 분"이다. 아주 낯설고,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론 존경과 감동이 있었다. (예전 글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choncreate/26)
입양이라는 단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자주 접했다. 특히 즐겨보던 '모던 패밀리'에서 미첼, 캠의 입양 자녀인 릴리를 보면 참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서로의 가족이 되면서 식사도, 쇼핑도, 여행도 공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별그램에서 지인의 소식을 보고서는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SNS 사진 한 장이지만 '입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현실에서 처음 느꼈다.
다큐 3일에 언젠가 '설탕물 할머니'가 나오셨다. "어제저녁 설탕물 한 그릇 타 먹고는 (폐지를) 여기다 갔다 줬지" 그 말에 설탕물 할머니가 되셨다. 9년 후 다시 찾은 제작진에게 요구르트 하나를 건네신다. "사흘 동안 내 사진 찍느라 욕봤으니까 선물드릴게. 제일 좋은 것"
여전히 폐지를 주우시면서 몸은 성치 않으신데 마음은 누구보다 건강하시다. 설탕물에 비하면 요구르트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게 제일 좋은 것, 그걸 나눠주시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9년이 지나도록 삶은 치열하게, 마음은 따뜻하게 이어오신 모습, 존경 외엔 표현할 것이 없다.
필자는 고작 서른이라는 나이에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니 책임이라 짊어질 게 딱히 없다. 허나, SNS 지인과 설탕물 할머니를 보면서 '나'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스티브잡스가 말했듯 과거의 Dot들이 연결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바람직한 모습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스티브잡스의 다음 문장은 이렇게 이어졌다. 지금까지 쌓아온 그 Dot을 통해 미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마음껏 펼쳐보라는 스탠퍼드 대학 연설이다. 과거의 미련이나 지금의 망설임 따위는 제쳐두고 미래를 설레게 한다.
나도 언젠가는 혼자가 아닐 텐데, 배우자와 죽을 때까지 살아있을 그 시간에 대해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할까. 서른을 살고 있는 나는 아직 가늠이 오지 않는다. 다만 지인과 할머니처럼 내 삶에 충실히, 그리고 따뜻하게 익어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