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광양으로 이직을 하기 직전에 [20대의 돈 관리]라는 글을 남겼다. 2018년이 너무나 힘들었기에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브런치에는 몇 번이고 기록한 개인적인 이야기다. 2018년 2월이 되자 중국에서 돌아와야 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압류 직전까지 모든 삶이 송두리째 가라앉고 있었다. 한 번에 일어난 것도 아니라서, 한 달 한 달이 지날수록 새로운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뺨을 후려쳤다. 그게 8월까지 이어졌고,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버틴 나는 평일과 주말, 아침과 밤을 가리지 않고 쓰리잡을 뛰었다. 야간 일을 하고 꾀죄죄한 몰골로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내려와 면접을 봤으니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돌이켜 보면 최악 시기가 있었기에 최선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의 돈 관리]라는 글을 쓸 때는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지만, 공부를 하면서 마인드가 많이 달라졌다. 재밌는 건, 돈을 조금이나마 알고 나니 논리적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행동에 '그럴만한 이유'가 뒷받침되면서 유연하게 상황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오늘은 블로그를 쉬고 있는 이유와 30대로 접어들면 달라진 인식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사실 서른하나)
1. 수천 개의 갈림길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책은 '홍정욱 에세이'다. 신념이 옳은 것인지 살펴보고, 확실히 '나의 신념이다'라고 정의하는 모습이 아주 멋지다. 내용 중 스티브잡스를 회상하며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문 앞의 한 줄기 길, 산자락 나서자 천 갈래 길이 되더라는 고운. 천 갈래로 펼쳐질 삶의 길을 고민한다." 동시대를 살아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함께, 삶의 지향점이 얼마나 많은지, 산자락 나서자 무수히 펼쳐진다는 말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30대는 가장 역동적인 시기다. 결혼을 해서 제2의 인생을 도모할 것인지, 뒤늦게나마 더 늦기 전에 적성을 찾아 이직을 해야 하는지, 노후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할지, 모든 고민들이 미래에 얽혀있다. 친구들과 모였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그 결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구나 갈수록 치솟는 부동산 시세, 입지가 좁여오는 투자 규제, 마녀 사냥터가 되어버린 SNS까지 일상에서 희망이나 긍정을 가만히 있으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하루가 그러할진대, 미래의 고민이 밝을 수가 있을까.
홍정욱은 이러한 상황에서 빛을 마주하게 해준 인물이다. 그가 어릴 때, 그의 집안과 인맥들은 살짝 다른 세계라는 이질감을 주었지만 그가 읽고 배운 것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문 앞엔 한 줄기의 길이 나있고,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수천 개의 갈래길이 나올 테니 걸어보라는 선배의 조언. 불안과 걱정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이길 만한 실력을 갖추는 것까지 무섭게 드러냈다. 마치 2018년 지옥을 걷던 내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보들레르의 시, <여행>과 같았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아무려면 어떠랴
미지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면!
2. 방향
서른에 접어들고 나서, 홍정욱 보다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준 분이 계시다. 몸이 너무 좋으셔서 팔로우하게 된 인스타그램 지인이다. 팔로우 하다 보니 자연스레 스토리를 볼 수 있었는데, 매일 지방 몇 곳을 돌아다니며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고 계셨다. 정확하진 않지만 뮤지컬이나 예술 전시들을 기획하고, 무대를 직접 구성하시는 듯하다. 일에 대한 열정, 그 와중에 놓치지 않는 운동량을 보면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분이 과거에 겪은 교통사고 스토리를 올리셨다. 죽기 직전까지 갔던 그 처참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항상 건강하고 열정적인 모습만 봐왔기에 충격이 크게 다가왔다. 며칠이 지나서 그 게시글은 내리셨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하는 모습, 일을 하시는 모습을 올리실 때마다 '어떻게 사람이 이만큼 변할 수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DM을 보냈다. '나태함'을 극복하는 방법을 물었고, 과거가 계기가 되었는지를 조심스레 여쭤보자 아주 친절히 답장을 해주셨다.
그 DM을 주고받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안부와 격려,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가끔씩 주고받는다. 이름이나 나이는 모르지만, 존재만으로 큰 힘을 얻는다. 홍정욱이 스티브잡스를 떠올리며 동시대에 살았음을 기쁘게 여기는 것과 같다. 나는 이 분에게 천 갈래 길과 같은 다양한 삶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분에게 배워 지난 1년 동안 실천한 것 중 가장 뿌듯한 것은 이것이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내가 얼마나 들여다보고 진심으로 대하는지
덕분에 나는 지난 일 년 사이 삶의 방향도 잡고, 쉬기도 하며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충실히 살아내고 있다.
3. 기회
불과 일 년 사이, 잡아낸 기회들이 무수히 많다. 그중 하나가 이 N사 블로그였는데 일방문 2천 명대를 유지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다. 부업 목적으로 운영했으나, 부업으로 하기엔 시간 대비 매출이 높지 않아서 잠시 쉬고 있다. 내년 4월, 퇴사를 하면 다시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블로그 외에 회사와 시(지역)가 연계한 취업 강연을 네 번, 재능마켓 플랫폼에서 자소서 첨삭을 십여 건 했다. 나름 10년 동안 이직을 꾸준히 해온 터라 프로 이직러라는 타이틀을 조금씩 언급하며 말이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왔으며, 이들을 추려 사보에 연재를 하기도 했다. 글은 꾸준히 쓰고 있기에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들을 얻을 수 것이라 믿는다. 몇 개월 전부터는 해외구매대행을 하고 있다. 블로그를 멈춘 뒤 곧장 시작한 사업인데 어느 정도 순이익을 내고 있다. 회사 일에 지쳐서 목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니, 목표 매출액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 4월 퇴사를 확신할 정도만큼 잘 이뤄내고 있다.
최근에는 두 번째 사업으로 한 제약 회사와 계약을 할 뻔했지만, 회사를 다니는 이상 아직 감당할 깜냥이 되지 못해 스스로 포기했다. 대신 동창 친구와 구매대행을 연계한 오프라인 사업을 구상했는데, 서울에 있는 임대 매물을 알아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격증도 취득하고, 명상과 운동, 독서를 꾸준히 하고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1년 사이 어떻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냐 묻는다면 답은 이미 위에 나와 있다.
산자락을 나설 것,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충실히 살아낼 것. 매일 세 시 반에 기상하는 나는 아침 8시, 회사에 출근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세계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8시가 하루의 시작이지만, 나는 이미 4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이루고 출근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도 아침부터 활력이 충분히 채워져 있으니 능률 자체가 다르다. 부서 막내이지만, 입지는 부서에서 가장 크다고 자신한다. 주어진 몫을 해낼수록 더 많은 기회가 온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