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에 스마트팩토리를 운영한다지만, 스마트하지 못한 탓에 상담을 받고 있다. 취업코칭을 나가지만 정작 내 앞 길이 궁금해 진로 상담을 요청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상담은 대체로 옛스러운 것들로 이뤄졌고, 한 달 반이 지난 오늘, 상당히 나아진 면이 있어 상담을 종료했다. . 처음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했을 땐 만성 스트레스 진단이 나왔다. 부장님 선에서 등장하는 수치였는데,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걸 회사 복지로 상담센터에 오다니 우스운 상황이었다. 어찌되었 건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면서 '보통의 구간'을 벗어난 몇 가지 성향을 알게 되었다. . 다행인 점은 그런 성향들이 좋든 나쁘든 써먹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자기 통제와 억제라는 단어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듯 말이다. 호기심이 왕성하지만 끈기가 부족하니 매주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거나, 내키는 만큼이라도 유산소를 하고, 명상을 하다가 곯아떨어지는 것도 썩 괜찮았다. . 결과적으로 스트레스 지수는 부장급에서 과장급으로 내려왔고, 알파파와 집중력 수치는 크게 올랐다. 덤으로 창의력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향상되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다. 한 달 반 만에 이렇게나 개선되었으니,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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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기방어기제 검사에서 방어를 전혀 하지 않는 모습이 나와서 당황스럽다. 25년을 상담하신 상담사님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 본다고 하시는데 "나는 보편적이지 않은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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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들을 멀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보통은 그런 것들과 조금씩 타협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심지어 악랄한 사람들은 나를 타락시키기 위해 노력할지 모른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같은 부서의 어떤 분 얼굴이 무심코 떠올라 한 번 더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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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 사회라는 정글에서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쉬울까? 의문이다. 오늘 점심에, 같은 사업을 하는 어느 사장님께서 취업을 하려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오셨다. 회사라는 본업 귀퉁이에서 온라인 장사라는 사업을 꾸리고 있는 나는, 착잡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