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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Jan 15. 2022

나는 미래를 팝니다


해외 구매대행 7개월 차. 어제 드디어 첫 부가세 신고를 마쳤다. 지난 반 년 동안 얼마큼의 매출이 일어났고, 지출은 얼마나 되는지 자료를 준비하면서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세무사를 통하면 편하겠다, 둘째는 생각보다 불필요한 수수료를 꽤 지출했네. 다행히 납부면제에 해당하는 4800만 원 미만 간이과세자였기 때문에 아주 꼼꼼하게 정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적은 순이익에 마음이 조금 편치 않았다. 첫 3개월은 시작 단계이니 뭐 벌지도 않은 게 당연하 건마, 괜스레 6개월 동안 노력한 게 고작 이 정도인가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부업으로 사업을 하면서 포기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는 상품을 판 게 아니라 내가 포기한 것들을 팔았던 셈이다.


이를테면, 시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쇼핑몰을 둘러보기란 재밌기도 하지만 고약스러운 업무 중 하나다. 재빠르게 상품들을 선별해 리스트를 만들면 이보다 보람찬 시간이 없겠지만, 어느 날은 한 시간을 내리 둘러봐도 마땅한 상품 하나를 건지기도 힘들다. 사전에 내가 얼마나 트렌드 데이터를 준비했는지, 오늘 뇌 컨디션이 어떤지에 따라 능률이 확연히 달라지니 시간이 정말 고약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시간은 팔지 않는다. 보통은 시간을 투자했으니, 시간과 돈을 바꾼 게 아니냐고들 하겠지만 나는 내가 그리는 미래를 위해 그 시간 동안 일을 했을 뿐이다. 만약 부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이든 운동이든 뭐라도 하면서 어차피 보낼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포기한, 내가 파는 목록에는 시간을 넣을 수 없다.


이렇게 집요하게 '파는 것'을 고민하는 이유는 구매대행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주문이 들어오면 해외에 발주를 넣고, 배송대행지(창고)를 통해 고객에게 택배를 보낸다. 나는 상품을 직접 팔지도 않고, 물류 유통에서 발생하는 마진을 챙기지도 않는다. 그저 저 프로세스를 이어주는 '서비스'를 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내 서비스가 어떤 것들을 토대로 만들어졌는지 알 필요가 있다.


서비스는 몇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앞서 말한 새벽 3시의 상품 소싱부터 점심시간의 주문 처리, 저녁 무렵의 CS나 기타 업무들까지 하루를 망라한 일정이 서비스로 구현된다. 이런 하루가 반복되다 보면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채워지고, 머지않아 일 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다시 일 년이 지나면 미래가 되고, 돌이켜 보면 미래는 오늘 하루에서부터 설계가 된 셈이다.


그래서 단편적으로 결론을 짓자면, 나는 미래를 팔고 있는 셈이다. 홍정욱님의 <50에세이>에 굉장히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문 앞의 한 줄기 길, 산자락 나서자 천 갈래 길이 되더라는 고운"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수 천 가지의 미래가 펼쳐진다니, 상상만 해도 절로 행복해지는 문장이다. 하지만 하루를 쌓아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지금의 서비스는 다른 갈래의 미래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단 하나의 길만 남겨두고 모조리 포기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구매대행을 함으로써 천 갈래의 길이 한 달 후 몇 백으로 줄고, 년이 지나면 몇 십의 길로 줄어들 것이다. 이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물리적인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시간 동안 이룰 수 있는 경험의 양도 점차 줄어드는 것이 당연지사 아닐까.


그럼에도 아쉬움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때, 유재석님의 말이 참 덤덤하게 조언으로 다가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왜 오느냐. 늘 그것만 고민하고 정작 해야 될 건 안 하고 있어서... 내일 당장 녹화면 대본을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데, 밤새 고민만 해. 내일 실수하면 어떡하지? 내일 잘해야 되는데. 그리고! 내일 실수를 해. 내가 생각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면 안 돼. 그걸 벗어나서 최선을 다해야지. 그게 바로 혼신이야."


선택과 미련이 겹쳐 하루의 서비스가 만들어질 때, 최선을 다했다면 똑같은 아쉬움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혼신을 쏟았다면, 과거에 놓친 미래조차 복원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게 바로 스티브잡스처럼 재기에 성공한 사업가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다. 나 역시 지금은 가지치기를 하며 미래를 팔아대지만, 혼신을 쏟는다면 놓쳤던 미래들을 다시금 마주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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