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고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아오 Jul 06. 2022

4년 만에 연체했던 카드사의 VIP가 됐다

2018년은 나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다.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만한 사건들이 연거푸 터졌었는데, 그중 하나가 신용카드 연체였다. 연체 3일 차가 되자 카드사에선 곧장 전화가 걸려왔다. "7일이 될 때까지 결제하지 않으면 타 금융사에 신용기록이 전달됩니다." 그날로부터 매일 전화가 걸려왔다. 한 달이 되면 신용 불량자가 된다는 연락이었다.


사실 내 신용이 불량해진다는 것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내가 지키지 않은 약속이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벌어진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서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오는 전화는 나 대신 구덩이를 대신 파주고 있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쯤, 어렵게 지인에게 돈을 빌려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단기 연체 기록이 남아 금융 거래에 영향은 물론이고, 신용등급이 바닥까지 내리꽂은 상태라 한동안 정상적인 금융 생활은 불가능했다. 3년이 지나서야 단기 연체 기록이 삭제되었다. 근 1~2년, 부동산 호황에 친구들이 "대기업도 다니면서, 집 준비 안 해?"라고 물을 때면 "다른 것 좀 하려고" 둘러대던 말버릇을 이제는 고칠 때가 되었다.




| 사업


기록이 삭제된 후 사업을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고객의 돈이 스마트 스토어 같은 플랫폼에 적게는 일주일, 길게는 세 달이나 묶인다. 사업이 커질수록 매입금도 올라가는데, 신용카드만큼 편리한 게 없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돈을 모으려면 '신용카드를 잘라버려야 한다'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호되게 한번 힘든 경험을 치르고 나니, 최대한 곁에 두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또한 '레버리지'라고 할 수 있겠다. 체크카드는 내가 가진 현금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신용카드는 한도 내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장부만 잘 관리한다면 리스크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가계부만 잘 쓴다면 자신의 소비 총량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요즘은 앱이 너무 잘 되어 있으니 쓸 것도 없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혜택'이다. 체크카드는 수수료가 (아주 조금) 더 낮은 대신 혜택이 그다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신용카드는 생각보다 많다. 쓰는 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받는 혜택 '비율'이 늘어난다.




| 신용카드


나는 해외구매대행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결제금의 상당수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자신의 지출 패턴을 파악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는 2개다. 하나는 해외 결제 시 페이백을 무려 3%나 해준다. 다른 하나는 결제금의 2%를 포인트로 적립해 주며, 국제 브랜드 수수료를 1% 면제해 준다.


그 외에 지출이 많은 서점이나 카페에서도 추가로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일일이 따지고 보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세이브하고 있는 셈이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사업을 키우는 단계에서는 내가 가진 자본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로 레버리지를 키워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업 안정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 VIP


어제는 카드사에서 연락이 왔다. 2010년쯤부터 사용했으니 무려 12년을 거래한 회사이다. 하지만 초반에 말했듯이 2018년엔 나를 신용불량 코앞까지 밀어붙였던 그 카드사.



프리미엄 회원이 되었다는 안내였다. 그중에서도 3천만 원 이상 이용했을 경우 붙여지는 티타늄 등급. 내 손에 쥐어지지만 않았을 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적지 않은 돈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슬쩍 눈물이 났다. 손가락으로 연수를 세어 보니 딱 48개월 만이었다. 회사를 다니든 사업을 하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저신용. 슬슬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올해는 사업이 더 커질 테니 이용하고 있는 다른 금융사에서도 등급이 올라갈 터이다. 그래 봐야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붙잡고 일 아니면 공부만 하고 있으니 주어진 혜택을 누리진 못하겠다.


신용카드는 말 그대로 신용을 담보로 하는 카드. 4년 전 나에게 매몰찼던 카드사가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너의 신용을 한 번 더 지지할 테니 열심히 이용하라고. 장난스럽게 격려받는 기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와 이별의 공통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