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나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다.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만한 사건들이 연거푸 터졌었는데, 그중 하나가 신용카드 연체였다. 연체 3일 차가 되자 카드사에선 곧장 전화가 걸려왔다. "7일이 될 때까지 결제하지 않으면 타 금융사에 신용기록이 전달됩니다." 그날로부터 매일 전화가 걸려왔다. 한 달이 되면 신용 불량자가 된다는 연락이었다.
사실 내 신용이 불량해진다는 것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내가 지키지 않은 약속이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벌어진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서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오는 전화는 나 대신 구덩이를 대신 파주고 있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쯤, 어렵게 지인에게 돈을 빌려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단기 연체 기록이 남아 금융 거래에 영향은 물론이고, 신용등급이 바닥까지 내리꽂은 상태라 한동안 정상적인 금융 생활은 불가능했다. 3년이 지나서야 단기 연체 기록이 삭제되었다. 근 1~2년, 부동산 호황에 친구들이 "대기업도 다니면서, 집 준비 안 해?"라고 물을 때면 "다른 것 좀 하려고" 둘러대던 말버릇을 이제는 고칠 때가 되었다.
| 사업
기록이 삭제된 후 사업을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고객의 돈이 스마트 스토어 같은 플랫폼에 적게는 일주일, 길게는 세 달이나 묶인다. 사업이 커질수록 매입금도 올라가는데, 신용카드만큼 편리한 게 없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돈을 모으려면 '신용카드를 잘라버려야 한다'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호되게 한번 힘든 경험을 치르고 나니, 최대한 곁에 두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또한 '레버리지'라고 할 수 있겠다. 체크카드는 내가 가진 현금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신용카드는 한도 내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장부만 잘 관리한다면 리스크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가계부만 잘 쓴다면 자신의 소비 총량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요즘은 앱이 너무 잘 되어 있으니 쓸 것도 없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혜택'이다. 체크카드는 수수료가 (아주 조금) 더 낮은 대신 혜택이 그다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신용카드는 생각보다 많다. 쓰는 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받는 혜택 '비율'이 늘어난다.
| 신용카드
나는 해외구매대행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결제금의 상당수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자신의 지출 패턴을 파악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는 2개다. 하나는 해외 결제 시 페이백을 무려 3%나 해준다. 다른 하나는 결제금의 2%를 포인트로 적립해 주며, 국제 브랜드 수수료를 1% 면제해 준다.
그 외에 지출이 많은 서점이나 카페에서도 추가로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일일이 따지고 보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세이브하고 있는 셈이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사업을 키우는 단계에서는 내가 가진 자본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로 레버리지를 키워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업 안정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 VIP
어제는 카드사에서 연락이 왔다. 2010년쯤부터 사용했으니 무려 12년을 거래한 회사이다. 하지만 초반에 말했듯이 2018년엔 나를 신용불량 코앞까지 밀어붙였던 그 카드사.
프리미엄 회원이 되었다는 안내였다. 그중에서도 3천만 원 이상 이용했을 경우 붙여지는 티타늄 등급. 내 손에 쥐어지지만 않았을 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적지 않은 돈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슬쩍 눈물이 났다. 손가락으로 연수를 세어 보니 딱 48개월 만이었다. 회사를 다니든 사업을 하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저신용. 슬슬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올해는 사업이 더 커질 테니 이용하고 있는 다른 금융사에서도 등급이 올라갈 터이다. 그래 봐야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붙잡고 일 아니면 공부만 하고 있으니 주어진 혜택을 누리진 못하겠다.
신용카드는 말 그대로 신용을 담보로 하는 카드. 4년 전 나에게 매몰찼던 카드사가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너의 신용을 한 번 더 지지할 테니 열심히 이용하라고. 장난스럽게 격려받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