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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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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Aug 26. 2022

했지만 못했는데요.

빨래통에 넣을 양말을 쓰레기통에 넣기 직전에서야 알았다. 아, 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가끔 이런 날이 태어난다. 온갖 불운과 좌절을 차곡히 모아 짜잔! 하고 나타나듯 말이다. 내게는 어제 하루가 그랬다. 집 코앞을 다녀오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지고, 애써 돌린 빨래에선 기대하지 않은 냄새가 나고, 밥솥에는 밥이 남은 줄 알았건 마 반공기도 채 남아있지 않던 하루. 특히나 브런치 공모전을 준비한답시고 일주일 동안 일을 줄였는데, 준비는 커녕 맥락을 못 잡아 좌절했다.


지난 공모전 당선작을 보고 나서야 눈치챘다. 나는 꽤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당선작들을 보면 어떤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며 연필을 움켜쥐고 쓴 듯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돌리고, 줄이고, 숨기고. 마침표를 찍는 문장 끝에서 '이건 나만 알아볼 수 있겠네.'라며 문장을 그려낸 시간을 후회했다. 다행스럽게도 스터디 카페에서 쉰 냄새가 풍겨왔다. 비가 환풍기든 실외기든 뭐든 푹 적셨구나. 미련도 없이 가방을 챙겨 빠져나왔다.


걸음을 그대로 헬스장으로 옮겼다. 가만 보니 일주일 동안 일뿐만 아니라 운동도 내려놓고 있었다. 7일 중 네 번은 가던 헬스장인데 마지막 방문일이 6일 전으로 표시된다. 로잉 1000m에 땀을 좀 흘리니 정신이 깬다. 바벨에 분노를 꽂아 들어 올린다. 나를 대적하는 지구를 바닥에 엎어져 손바닥으로 힘껏 밀어낸다. 마무리는 윗몸일으키기. 200개를 하고자 노트에 적었지만, 어째서인지 170여 개를 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없지만 오늘 운동은 여기까지 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끝내 채우지 못한 서른 개가 찝찝하다. 나는 오늘 운동을 포기로 기록할 것인가, 운동을 했으니 성공으로 기록할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모든 일에 꼭 이렇게 평가를 내리지 않아도 되건 마 길을 걸을 때면 문득 방금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조금 전에 잘 살았어?' 매 순간을 점검하는 교관이 머릿속에 터를 잡은 듯하다. 하지만 웃기게도 대부분의 일들은 성공과 포기가 아니라, 그 중간 어느 정도쯤에 종료된다. 했지만, 못했는데요.


저녁을 간단히 국밥으로 해치우고 자리에 누웠다. 비루하게 태어난 하루를 한 시라도 빨리 죽이고 싶어서 저녁 8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늘, 본의 아니게 새벽 한두 시 언저리에 눈이 떠졌다. 명상 앱을 켜고 5분 자애 수련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길. 새벽 두 시의 거리는 조용하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스산할 법 하지만, 곳곳에 불 켜진 편의점이 거리에 미약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카스텔라 하나를 사서 스터디 카페에 왔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눈곱만 떼고 왔는데, 몇 사람이 박혀 있다. 어제와 오늘 경계에서 저들은 무엇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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