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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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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Sep 05. 2022

생일에 관하여2

서른고비가 끝나가는 서른둘. 잃었던 생일을 되찾았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남들이 알아챌까 봐 SNS에서도 생일을 지웠다. 그 이유는 지난 글 '생일에 관하여1(https://brunch.co.kr/@choncreate/24)'에 기록해두었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 머릿속은 온통 압류인데 내 밖은 온통 생일인 셈


대체 내가 태어난 날의 어떤 기억을 가지고 기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생일에는 나의 상황이 깡그리 무시당한 채, 온갖 축하들이 날아들어오기 때문이다. 고난을 겪는 와중에도 축하가 오면 으레 답을 해줘야 한다. "고마워" 이 말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축하는 저주가 된다. 고맙다는 답장을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는 저주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생일을 철저하게 지웠다. 가족이나 친구 몇에게만 종종 날아오는 메시지를 제외하곤, 4년 동안 내 생일은 정말 새벽 눈처럼 찾아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다. 고요했다. 월요일 다음엔 화요일이 이어지는 것처럼 그저 하루의 반복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생일은 줄곧 챙겨 왔다. 최근에는 전 직장 팀장께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감사해요. 와아오씨. 건승하세요. 그리고 챙겨주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선물은 취소해주세요. 제가 수도권에 가면 술 한 잔 합시다."


저 답장을 받고 손가락이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나보다 스물다섯이나 많은 어른의 답장이 자못 인자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챙겨주는 마음이라니. 지난 4년간 놓치고 있던 축하의 의미를 이렇게나 늦게 알아차렸다. 팀장님께 좋은 생일 보내시라고 답신을 보낸 뒤, 슬며시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을 on 했다.




2022년 9월 5일. 생일이 밝았다. 오랜만에 알림이 뜬 줄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메시지가 날아든다. 보통 선물과 함께 도착하지만, 선물은 신경 쓰지 않는다. 눈에 담기는 짧은 문장들. 모두 복붙 한 것 마냥 비슷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와아오! 생일 축하해


이 말은 고작 3초도 안 걸려 작성되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소중한 문장이다. 상대가 내 생일을 확인하고, 깊은 고민 없이 3초 안에 축하를 결정 헸으니 말이다. 상대와 나의 거리는 고작 3초. 그저 하루의 반복이었던 생일이 행복으로 바뀌는 찰나이다.


오랜만에 생일을 누려본다. 태어난 날의 기억이 아니라 쌓아갈 기억을 위해 인사하는 하루. 오늘은 고맙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겠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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