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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Dec 09. 2022

일기 한 달 차, 손가락 근육이 생겼다

지난 11월 1일부터 매일 저녁 감사 일기를 쓰고 있다. 실은 중간중간 '아 됐어. 해봤자 뭘.' 이런 생각으로 건너뛴 적도 있다. 그럼에도 샤워를 하고 나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오늘 어떤 일 참 재밌었는데.' 일기가 습관이 되자,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일어난 일들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오늘은 투잡을 계약했다. 사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인으로써 근로계약서를 만든 지 10개월 만이다. 이번엔 내가 피고용자가 되어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온 가족에게 전화를 돌렸다. 새로운 일이 주는 설렘을 공유하면서 가족들의 표정을 상상한다. "와아오가 와아오했네." 그런 표정일 것이다.


평소 일기에는 수많은 감사를 쓰곤 한다. 맛있는 바나나를 팔아준 과일가게 사장님께 감사, 백화점 문을 잡아주신 앞서가던 아주머니, 버스에서 내리기 편하게 기꺼이 일어서 준 학생. 그런 소소한 감사들에 잠들기 전 한 번 더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오늘은 감사라곤 딱 한 마디만 적었다. '모험을 당차게 이어가는 나에게, 나를 믿는 나에게 감사하다.' 




나는 신기하게도 정확히 4년마다 인생의 큰 선택을 한다. 16세에는 봉사활동에 심취해 몽골을 다녀온 뒤 태안 앞바다를 그렇게 쏘다녔고, 20세에는 대학을 자퇴하고 취업을, 24세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워홀을, 28세는 욜로족을 그만두고 재취업을, 그리고 32세에는 마지막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심지어 8세, 12세에 이사를 한 것까지 치면 정말 4년마다 큰 변화를 겪는다. 이 이야기는 블로그(https://blog.naver.com/choncreate/222735861444)에서 더 엿볼 수 있다. 아무쪼록 이렇게 4년마다 달라지는 이유는 모험을 즐기는 습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리 좀 잡아야지'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어느 순간 몸은 흩어져있다. 이미 혼돈 속에서 쌓아온 경험치가 근육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어쩌면 이런 변화들이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올곧이 다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 동안 쌓인 일기들을 훑었다. 이상하게도 펜을 잡는 방법이 달라지지도 않았건 마, 글씨가 다듬어져 갔다. 처음에는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잡했다. 갈수록 글자가 정리되고, 오늘의 일기에서는 모든 글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달만에 손가락 근육이 생긴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키보드에 익숙해져 펜을 잡지 않았다. 그래서 펜으로 글을 오래 쓰지 못했고, 힘이 빠진 손가락은 제멋대로 굴러 악필을 남겼다. 그렇게 한 달을 반복하니 손가락이 펜을 올곧이 잡아 뚜렷한 글자를 남겼다. 한편으론 저마다의 글씨체가 자리 잡기까지 적어도 한 달이 걸리는 셈이다. 


글씨체에 한 달, 맞춤법에 몇 개월, 글쓰기가 익숙해지기까지 몇 년. 그리고 32년을 살아온 나에게 어떤 근육이 붙었을지 상상해본다. 모험을 당차게 이어가는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근육이 아닐까. 조니뎁이 되어 가끔은 악당을 소탕하고 보물을 발견하는 꿈을 꾸며 잠이 든다.


나의 선택에 행복이 깃들기를. 


11.03 악필
12.08 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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