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집에서 요리를 조금씩 하고 있다. 요리라 해봐야 찌개라든지 밑반찬이나 고기를 하는 정도이지만 어엿한 한상이 차려진다. 2023년에 들어서는 제철 음식도 하나씩 만들어보고 있다. 봄동에 이어 2월에는 꼬막을 무쳤는데 해감이 영 어려워 '그냥 이쯤에서 먹자'며 검은 이물이 다 씻기지 않은 상태로 먹었다. 덕분에 내년 제철엔 꼬막을 아주 제대로 해감하기로 다짐했다.
4월에 들어선 달래를 무치기도 하고, 된장국에 넣어 먹기도 했다. 어제는 부추 한 단을 사서 기름장에 무치고, 남은 조금은 찜닭에 넣어 먹었는데 꽤나 맛이 좋다. 겸사겸사 떡볶이를 만들다 남은 양배추도 한 움큼 집어넣으니 2인이 먹어도 남을 만큼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1인가구에게 '남은 재료'란 곧 쓰레기와 다름없으니 말이다. 흔히 쓰는 양파나 감자는 사흘만 지나도 싹이 보이거나 무른 부분이 보인다. 그래서 그전에 어떻게든 "양파 요리"나 "감자 요리"를 검색해서 만들거나 다른 음식에 투하해 버린다. 그렇게 만들어 둔 음식은 냉장고에 들어가면 쉬이 잊고는 시간이 지나 "어이쿠, 이게 있었네." 하며 버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꿋꿋이 만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요리하지 않는 게 1인가구에게 합리적 선택이다. 배달음식의 배달비가 올라서 비싼 감은 있지만, 집 근처 걸어갈만한 거리에 식당이 있다면 포장으로 사 먹는 게 이득이다. 요즘엔 대부분이 포장할인을 하는 터라, 정말 이득이다.
단순히 재료값만 따져도 만들어 먹는 게 더 비싸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 버리는 양까지 생각하면 아까운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나 같이(꼬막을 다 해감하지 않는다거나 재료들을 있는 대로 투하해 버리는 식) 요리를 한다면 맛 또한 식당에 비해 한참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요리를 하는지 묻는다면 오로지 과정에 있다.
인터넷에 "10분 요리"라고 나오는 음식들은 실상 20분은 족히 걸린다. 요리하는 동안 발생하는 설거지까지 생각하면 25분은 잡자. 그럼 그 25분 동안 어떤 느낌일까? 시간적으로도, 돈으로도, 입맛까지 모두 손해 보는 느낌일까?
아니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손해가 맞는데 이득을 보는 느낌이다. 조금은 건강해질 거라는 기대감, 어떤 맛이 태어날지 궁금한 호기심, 누군가 내 요리를 먹는다는 흐뭇함까지 25분 동안 행복을 몰아서 느끼는 기분이다.
책 <행복의 기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며, 호르몬(화학물질)에 의해 나타난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활동인 먹기(에너지 충전), 섹스(번식), 수면(회복) 등을 하면 보상으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래서 저자는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기'를 추천한다.
여기에 만약 내가 요리한 음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나면 그날 하루, 운이 좋다면 며칠은 마음이 후련하다. 어쩌면 나의 일상을 채우는 행동들은 시간이나 돈보다는 감정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달콤한 인생> 독백,
"스승님,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나무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대답하길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요, 나뭇가지도 아니며, 네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