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주의 티끌조차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그 티끌보다 작은 한 지구에서 가장 흔하게 펼쳐진 부모의 사랑도 이해할 수 없다. 자식을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엔 내가 가보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맛보지 못한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다 취하려 하는 것은 ‘탐욕’일 뿐이다. 되도록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결국엔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
노후, 어른이 되었을 때 기쁜 것은 무엇일까. 흔히 노후를 보내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그저 자식들 보고 산다’는 말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부모의 사랑이 가장 큰 행복 요인 중 하나라고 판단한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처럼 정말 마음에 통증이 아린 느낌을 모두가 경험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아린 마음을 두 번 경험했다. 그래서 사랑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익히 알고 있다.
쏟아지는 밤하늘에 압도되는 그 마음은 일순간이지만, 사랑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세상의 모든 맛, 모든 풍경, 모든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사랑부터 취하라.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대체할 만큼 존재 가치가 크다. 그러므로 나는 인생의 목표를 ‘사랑’으로 정했다.
사랑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스토르게(부모로부터의 사랑), 필리아(친구나 동료 유대감), 에로스(육체적, 낭만적인 사랑), 아가페(무조건적인 신의 사랑). 나는 신이 아니므로 아가페를 제외한 세 가지 사랑을 취할 수밖에 없다. 세 가지 사랑은 실존의 밑거름이며, 이 곳에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어느 죽는 날, 나는 이곳에 후련함을 남기고 싶다. ‘후련함’이야 말로 모든 관계, 과정에서 가장 완벽한 결말이 아닐까. 언제 죽어도 ‘아, 잘 살다 간다’라는 후련함이 남도록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세 가지 사랑을 경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