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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회 Feb 18. 2024

손죽도 (巽竹島)

삼각산 이대원장군

예전에 비하여 뱃길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배를 타는 사람이 적으니까 선사 입장으로 보면

우선 수지가 맞지 않고

그러다 보니 항차를 줄이거나 경유하던 항구를 패스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관광객의 측면에서 보면

배가 자주 없으니 운신의 폭이 좁아지겠죠

가령 시간적으로는 당일치기가 충분한데도 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숙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그렇다고 숙박을 해 가면서 트래킹을 할 정도의 규모는 아닌 것 같고


암튼

손죽도와 초도를 일거에 타진하려 했던 계획이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고

아쉬운 대로 손죽도만 먼저 탐방해 보았습니다


앱 [가보고싶은섬]에서 예매를 하려다가 잔여석이 "0"으로 나오길래 그럴 리가 있나 싶어 선사에 문의를 했더니


시간도 좀 다른 것 같고

여수항에서만 출항한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이배가 나로도항을 경유해서 가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확인하지 않고 나로도항으로 갔더라면 온전히 낭패 보는 거였죠


07 50 여수항 출항

09 15 손죽도 하선

15 45 손죽도 출항


섬이 아담하여 체류하는 동안 서두르지 않아도 탐방하는 시간은 충분합니다


아무래도 손죽도의 랜드마크는 삼각산으로 알려져 있는 암봉일 겁니다


두 개의 암봉이 나란히 솟아 있는데 마이산과 같이 한쪽 봉우리만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암봉도 멋있지만

암봉에서 항구를 바라보는 모습도 꽤 좋습니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과하다 싶을 만큼 데크 전망대가 많은데요

최고봉 깃대봉(237)에는 정상표지석 대신 통신 안테나가 서있더군요



왜 손죽도라 했을까?


선착장에 내리면 앳된 얼굴의 장군 동상이 반겨줍니다


왜놈과 싸우다가 전사하셨다는 이대원(李大源) 장군인데요

손죽도를 빛낸 최고의 인물이 아닐까


이순신 장군께 원균이 있었다면

이대원 장군에게는 전라좌수사 심암이 있었답니다


경기도 평택에 태어나셨군요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고

가장 젊은 나이 21세에 녹도 만호(鹿島 萬戶)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5년 전

손죽도 인근 해상에 침공한 왜구 20여 척을 대파하고

왜장을 사로잡아 전라좌수사 심암(沈巖)에게 압송하였답니다


심암은 전공을 자기 것으로 하겠노라 부탁을 했고

이대원은 이를 거절했겠죠


심암은 앙심을 품었을 터


패전한 왜구들이 더 많은 전함을 이끌고 재침하였고


이대원 장군은 전열을 정비하고 주도면밀한 작전하에 출전하려 하였으나

심암은 일단 출전하라

지원군을 보내 주겠다


하지만 지원군은 오지 않았으며 3일간 분전을 했으나 결국은 장렬히 전사하였답니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분노하여 이대원 장군의 전사는 다분히 심암의 계략임을 조정에 상소하였고


선조임금은 심암을 한양으로 압송하여 효수형에 처했다네요


이순신 장군은

이대원 장군을 잃은 것은 국가에 큰 손실이라 하여 이 섬을 손대도(損大島)라 부르게 되었고


일제강점기 언저리에 손죽도로 바뀌었고 합니다


이 섬에는 이름답게

러운(巽)

대(竹) 조릿대가 군락이더군요


이대원 장군이 전사하기 직전에 시를 한 수 남겼네요

장군의 동상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절명시(絶命詩)라고 합니다

해석해 놓은 부분을 아래와 같이 발췌했습니다


[해 저무는 진중에 왜군이 바다 건너오니

군사는 외롭고 힘이 없어 죽으니 서글프다

임금과 부모님께 충효를 보답하지 못하니

한스러움과 먹구름이 엉켜 풀 길이 없네]


국가관과 충효사상이 뚜렷한 이대원 장군께서 이때에 희생되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의 판도는 달라졌겠죠


역사적으로 어느 때나

모사꾼과 간신배들이 나라를 망칩니다


4월에 총선이 있다죠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두 눈을 부릅뜨고

도둑놈

사기꾼

모사꾼

간신배

를 걸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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