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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회 May 02. 2024

월출산 (月出山 809)

천황봉

5월 1일은 노동절이죠

달력의 글자색은 까맣지만 근로자는 휴일입니다


3개월쯤 전에 월출산 최고의 비경을 리딩해 주기로 예정이 돼 있던 바

국공이 발호하지 않겠다 싶은 날을 골랐더니 근로자의 날이 D-데이로 뽑힌 것이죠


더하여

철쭉이 피었을 것이므로 시기적으로도 금상첨화입니다


문제는 날씨인데

하루종일 흐릴 것이라는 예보여서 찝찝하긴 하지만 이미 약속된 것이므로 강행할 수밖에 없었죠


4시 45분 창원에서 출발할 때는 안개비였는데

함안부터는 빗줄기가 거셌습니다


천황사 주차장에 도착했더니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온전히 내려앉았고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주차장은 거의 비었더군요


"음! 국공이 방해하지는 않겠구나"


바람폭포로 향하다가 계획대로 숨어있는 경치를 찾아 비팀길을 접어들었는데요

운무는 더욱 짙어져서 맞은편 구름다리까지는 다 덮었습니다


형제봉에 당도했더니 시야가 가물가물

점점 기상조건은 악화되었고

급기야 비를 뿌렸으며


올라갈수록 가시거리가 좁혀지더니

월출산 최고의 풍경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에서는


아뿔싸!!!

철쭉은 소담스럽게 피었는데

꽉 채워져야 할 건너편의 구름다리와 사자봉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풍경의 주체가 빠졌으니

앙꼬 없는 찐빵


장군봉 앞에 당도했지만 천지 분간이 안 되는 곰탕의 분위기!

현란한 바위들은 모두가 구름 속에 잠겨 버렸습니다

숨은(祕)

풍경(景),

글자 그대로 비경이 돼 버린 것이죠


식별이 가능한 바위는 10여 미터 이내


어차피 천황봉까지 올라가 본들 조망은 제로일 것이고

빗줄기도 점점 굵어져서 광암터에 당도하자마자 하산을 결정했죠


바람폭포를 지날 즈음 시야가 확보되는 게 뚜렷하여 그래도 구름다리는 건너보고 하산해야지 하면서 다시 꾸역꾸역 계단을 밟아 올라갔습니다


건너편에는 조금 전에 올랐던 장군봉 능선이 선명하더군요

언제 봐도 장관이죠


불과 2시간 전만 해도

저 능선을 헤집고 다녔는데

저 좋은 풍경을 깡그리 숨겨버리다니

참 아쉬웠답니다


다시 궤도 수정을 했네요

"천황봉을 찍고 산성대로 하산하여 택시를 타고 원점회귀하자"


하늘은 온통 구름이지만 다행히 운무는 서서히 걷여지고 비가 온 다음이라 미세먼지도 한결 세력을 잃었습니다


정상 천황봉에 닿았더니 또다시 운무가 몰려들었고 10여분 사이에 온통 백지상태였습니다


이 조그마한 산이

바람도 거의 없는데

무슨 조화로 이리도 변화무상할까?


하산하는 동안 운무는 상당히 물러갔고 이례적일 만큼 깨끗한 조망은 월출산을 전세라도 낸 듯 유유자적

풍경과 힐링에 도취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월출산 봉우리들의 이름을 되뇌어 보았죠


천황봉

장군봉

형제봉

사자봉

연실봉

매봉

시루봉

달구봉

양자봉

향로봉

구정봉

노적봉

사리봉

31번째 본 월출산은 역시

천봉용수(千峯龍秀)요

만령쟁호(萬嶺爭虎)입니다


천 개의 봉우리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용과 같고

만 개의 계곡은 호랑이가 서로 다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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