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동회 May 16. 2024

영천 꽃구경

부처님 오신 날, 작약꽃, 포은 정몽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하루를 더 쉴 수 있다는 기회가 셀러리맨에게는 얼마나 큰 덕목인지요!


비록 미불자이긴 하나 부처님의 자비를 얻어 덩달아 일상에서 해방되는 날을 맞았습니다


석가모니 님!

국개(犬)의원 나리들

고맙심더


이 날을 어디에 써먹을까?

어디로 가야지?


예년 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지사

바래봉에 갔을 겁니다


이미 전해 드렸지만 올해는 철쭉이 완전 흉작입니다


겨울은 춥고

봄은 따뜻해야 할 시기에

변덕스러운 날씨가 거꾸로 된 데 기인한 거겠죠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은 철쭉들이 긴장을 풀어 버렸고

매섭게 추웠던 봄에는 넋을 잃고 잔뜩 움츠리는 바람에 꽃눈을 틔울 엄두가 안 났을 겁니다


그러니 황매산 철쭉에 이어

바래봉 철쭉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철쭉 산행을 접고 보니 막상 갈 곳이 없더이다

웬만한 산은 다녀버려서 새로울 것도 없고

섬에 가자니 가고 싶은 곳은 물때가 안 맞고


SNS 서핑을 하다 보니 경북 영천의 금호강변에 작약과 양귀비가 보이더군요


그랴!

영천 다리밑에 가서 가뿐히 꽃이나 보고 오자

그곳까지 간 김에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도 올라 보고

하물며 보현산 정상까지는 차가 올라가지 않는가!


그리하여

경상북도 영천(永川)으로 낙점하였나이다


영천!

이름이 참 좋죠?

영(永)원히 흐르는

내(川)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뜻이겠네요


시내를 가로질러 영원히 흐르는 강

금호강이 있는 데가 영천입니다


예전에

개인사업을 할 때 월 한두 번은 납품하러 다녔던 곳인데요


일부러 영천에 가기는 벌써 12년이나 지났네요

만불사 근처에 납품했던 회사가 있어서 귀가하는 길에 먼발치에서나마 그 회사를 보아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망해버린 내 회사

성장은 없어 보이지만 아직도 건재한 납품회사


고려말의 충신 길재 선생께서

망해버린 고려의 도읍지 개성을 돌아보며 읊으셨던 곡조가 떠 올랐습니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부처님 생신인데 왜 절에 갈 생각은 안 했냐고요?


갔쥬

영천의 만불사라고


근데 문이 닫혔던데요

18시에 도착했는데 장사가 끝나버린 겁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

절에도 영업시간이라는 게 있었구나



세계 3대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라고 하던데요

힌두교도 신도수가 11억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은 종교는 기독교와 불교이니 교주님께서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여 공휴일로 정했죠

성탄절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신도분들께서 경건한 맘으로 배당이나 법당에 가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걸 겁니다


매주 예배당에서 주님을 대하기는 좀 쉬운 편이지만

법당에서 부처님을 뵙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찰은 우리의 생활권과 많이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그렇겠죠


그러니

교회와는 달리 불전함이 꽉꽉 차지는 않겠죠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이라도 불자가 사찰을 찾을 수 있게

그리하여 불전함이 두둑할 수 있게

배려를 하자는 취지도 있을 겁니다


우스갯소리로 스님들은 초파일 하루 벌어서 1년을 먹고 산다고 하잖아요


혹여 비라도 와 버리면 1년 농사 헛농사가 되는 거죠


먹고사는 문제는

중생이나 스님이나 매 한 가지인 것!


일주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만 열중하고자 일체의 중생 출입을 봉(封)한다고 선언해 놓고

초파일 하루만은 개방한다고 표방하는 사찰이 있습니다

문경에 있는 봉암사입니다


하루 동안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시주를 받는 거죠


이 사찰은 신비주의가 가득 찬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개방된 날 불자와 관광객들로 절간이 가득 차고 소란 벅적했을 겁니다


오래전 희양산에 가려다가 봉암사 스님께 발목이 잡혀 곤욕을 치렀던 포스팅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링크 : https://story.kakao.com/_eTZCf4/hKmz6mja6JA





각설하고


7시 50분

#영천생태지구공원

에 당도하였습니다


영동교 다리 밑 금호강 둔치이더군요


금호강이 도심지를 관통하니까 오래전부터 수리 시설이 잘 되었겠으나

혹시 4대강 사업 때 낙동강의 곁가지로 이곳도 준설을 하였는지

강 언저리에 둔치가 상당하더이다


대개 둔치는 하천부지이므로 건물이나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나무도 심어서는 안 될 겁니다


만약 물이 범람하여 쓸어가 버리면 피해가 우려되고 보상도 감안해야 해서 그렇겠죠


그런데

이곳 둔치는 아예 홍수가 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는가 봅니다


잘 가꾸었더군요

지금도 열심히 화초에 물을 주고 관리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꽃도 각양각색이고 시민들의 생활체육이나 휴식 공간으로도 훌륭했습니다


유채꽃은 노랗다고 알고 있잖아요

이곳 유채꽃은 특이하게 보라색 유채꽃이었습니다


참 부럽던데요

저희가 사는 창원시는 공무원들이 정서적으로 매우 무미건조한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아 단번에 비교가 되더이다


우리 동네는 변변한 휴식공간이 없을뿐더러 개발할 의지도 없어 보이는데요

속된 말로

""필요하면 잘해놓은 다른 지자체에 가서 구경해라""



#작약 (芍藥)


이름에 약자가 들어 있군요

흔히들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고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관리하시는 분께 여쭈었더니

심은 후 4년 만에 수확하고 한약재로도 일부 쓰이지만 미백효과가 있어서 주로 화장품 원료로 판매된다고 하더군요


뜬금없이 웬 작약이냐고요?


금호강 둔치에도 작약이 있었지만 보현산 가는 길목에 작약 농장을 세 곳이나 만났다는 것 아닙니까!


아무런 정보

아무런 기대도 없었는데 뜻밖의 횡재였습니다


마침 17일부터 19일까지 축제가 있더군요

[영천한약축제 위더 작약꽃]


작약꽃을 원 없이 보았습니다


작목반에서 관리하는 것 같고 장소가 네 곳이나 되는데 저희는 무심코 세 곳이나 봐버린 것이죠


이번주말까지는 꽃이 잘 유지되리라 보고 작약꽃밭 4곳의 주소를 올려놓습니다


금호강 둔치에서 보현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순서대로 있습니다


① 화남면 삼창리 산 3-2

② 화북면 자천리 2082

③ 화북면 정각리 890

④ 대전동 318


①번은 주로 붉은 꽃이었고

④번은 보지 못했으며

③번이 가장 좋아 보였는데 보현산 입구에 있고

거의 3천 평쯤 됩니다

관리인 말씀에 의하면 4년 차여서 올 가을에 수확해야 하지만 내년을 위하여 1년을 미루었답니다



#보현산 (普賢山 1126)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곳이고

1996년에 세웠군요


이곳 천문대는 국내에서 가장 큰 광학 망원경이 있는데 지름이 무려 1.8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망원경이 있는 건물이 왜 그리 없어 보일까요!

외벽이 공장 짓는 데 사용하는 샌드위치 패널입디다

헛 그 참


바로 옆에 보현산 정상석이 있더군요

대구의 팔공산이 잘 보였고

청송의 주왕산과 거의 중간쯤 됩니다


그러고 보니

경주국립공원

팔공산국립공원

주왕산국립공원이 삼각편대를 이루고 그 가운데에 보현산이 있군요


천문대를 두어서

넓게(普)

어짐을(賢)을 퍼트린다는 의미가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임고서원 (臨皐書院)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명종 때 창건한 서원이랍니다


1.5km쯤 떨어진 곳에 포은 선생의 생가가 있는데요

아마도 임고서원이 이곳에 있는 이유일 겁니다


옛 서원이 있고

바로 그 옆에 신서원을 지었더군요


구서원이 정몽주 선생의 학덕에 비하여 너무나 초라했기에 서원의 레이아웃과 격식에 맞게 다시 건립한 것 같습니다


정몽주 선생 하면

한반도가 생긴 이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물 중 단연 최고의 충신입니다


바로 충신 하면 정몽주 선생인 셈이죠


하필 부처님 오신 날에 공자의 유학을 얘기해야 하니 좀 아이러니한데요


암튼

고려를 일으켜 세운 것도 팔만대장경 등 불심이지만

고려가 망한 것도 문란했던 불교에 기인합니다


그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소위 공자 선생의 유학을 받드는 신진 사대부이며

고려를 개혁하자는 국가적 어젠다가 되었죠


급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자는 정도전과 이성계 일파

점진적으로 변화시키자는 정몽주, 이색, 길재


이들의 갈등과 회유와 싸움은 사생결단이었습니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하여가를 지어 스승 정몽주를 꼬십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에 정몽주가 단심가로 답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협상은 결렬되고 이방원은 정몽주를 살해함으로써

개혁은 급진전되어

급진파는 숭유억불을 기치로 고려를 허물어서 조선을 창업했으며

이들은 훈구파가 되어 조선의 선조대까지 누렸습니다


온건 개혁파는 재야에서 활동하다가 유교를 숭상하고 학문을 정립해 가며 점차 세력이 커지더니 김종직이 조정에 출사 하면서 본격 발을 담가서 훈구파와 치열한 싸움 끝에 훈구파를 모두 몰아내고 사림파 세상이 되었으니


그들이 바로 조선의 중 후기를 쥐락펴락 당파싸움과 양반놀음에 몰두했던 우리의 할배들입니다


그러니까

정몽주 선생께서 전혀 의도치는 않았으나 사림파의 뿌리가 돼버린 우리 역사의 질곡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월출산 (月出山 80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