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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회 Sep 15. 2023

충남 나들이

덕숭산 수암산 용봉산 가야산

4년 전 오늘 이야기인데요

카카오스토리의 리마인드를 옮겨서 발행했습니다




충남 나들이


시절이 하 수상하여

인심이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한가위의 달빛은 예나 지금이나 교교하더이다


비록 마음이 깨지고 문드러졌을지라도 가족과 함께 웃어보는 명절이 되셨기를 앙망해 봅니다.



용봉산을 찜해 놓고 시간을 참 많이도 끌었습니다.

나서기도 어렵지만 달랑 용봉산만 보고 오기에는 심리적으로 워낙 먼 거리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여

추석 연휴를 활용하여 용봉산 주변을 탐방하기로 맘먹고 남들은 고향으로 향할 때 저는 거꾸로 충남 홍성과 예산을 여행합니다.

#덕숭산

#수덕사

#수암산

#윤봉길생가

#용봉산

#가야산

#남연군묘

#서산마애삼존불상

#예당호 출렁다

를 2박 3일 동안 돌아보고 왔습지요.



9월 12일


새벽 4시부터 330km를 달려 수덕사 입구에 주차하고 9시 10분에 본격 덕숭산을 탐합니다.


덕숭산(德崇山 495m)은

덕을 숭상하는 산

또는

덕을 닦는다는 의미에서 수덕산 이라고도 하네요


산기슭에 있는

수덕사의 대웅전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하는군요


옛날 술 좋아할 때 노래방에서 필 받으면 불렀던 노래

[수덕사의 여승]이 생각났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생가를 돌아보고

또 뻘짓을 했네요

수암산에 올라갔는데요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9월 13일 (추석날)


용봉산(龍鳳山 381m)은

용의 몸집에다

봉황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에서 유래한다고 하네요.


산이 참 해맑다고 해야 하나

아담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작은 근육들이 늘려있으니 볼거리가 다채롭습니다

이 신선한 가을날

이 산을 만끽한다는 게

저의 체질에 안성맞춤이었답니다



9월 14일


가야산 (伽倻山 678m)


합천의 가야산이야 워낙 빼어났으니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지만 이곳 예산의 가야산도 제법 유명세를 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산 입구에 [남연군묘]가 있는데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이구의 묘입니다.


이 묘에 얽힌 스토리도 재미있고

작년 추석 때 운현궁을 돌아보면서 흥선대원군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별도로 포스팅해 보겠다고 했는데요

남연군묘를 빙자하여 살짝 그의 삶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남연군묘는 아마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명당]인가요?


우리의 선대 어르신들은 거주하는 곳을 따질 때

살아서는 배산임수가 최고요

죽어서는 혈(穴)자리가 좋은 명당을 제일로 간주하였습니다.



대원군(大院君) 이란


임금님이 후사가 없이 승하해 버리면 종친 중에 적임자를 뽑아서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데 그 왕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 합니다.


따라서

임금에게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상왕 혹은 대원군이겠죠.


조선에는 4명의 대원군이 있었는데요

선조의 부 덕흥대원군

인조의 부 정원대원군

철종의 부 전계대원군

그리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興宣)대원군이 그들입니다


덕흥과 전계대원군은 사후에 봉해졌고

정원대원군은 뒤에 원종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임금의 생부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사람은 흥선이므로 일반적으로 대원군하면 흥선대원군을 지칭하게 됩니다.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


그는 국수주의자일까요?

개혁정치가일까요?


그는 잘 생기지도 않았고 키도 155 정도인데요

작은 체구와는 상반되게 야망이 매우 큰 인물이었습니다.


흥선은 12살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10년 동안 섭정을 했는데요

그는 수년간 발톱을 숨기고 아들을 임금으로 밀어 올리기 위하여 장기 플랜을 수립하고서 하나하나 착착 진행해 나갑니다.


때는 1800년 개혁군주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11살짜리 순조가 등극하였습니다.


하지만 워낙 어린 임금이라 궁궐의 최고 어른인 정순왕후가 섭정을 하면서 정조가 구축해 놓은 탕평인사를 모조리 허물고 노론의 벽파로 채웠습니다


그녀의 사후

이번에는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이 등장하여 벽파를 깡그리 몰아내고 시파를 등용하였으며 급기야 안동김씨 가문이 벼슬을 싹쓸이하여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게 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세도정치]라 합니다.


이는 고종이 등극하기 전까지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약 60년간 지속되었으며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기에 흥선이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세도정치 시절

순조는 11살

헌종은 8살에 임금이 되었고

헌종의 대가 끊기자 강화도에서 농사짓고 살던 19세의 강화도령을 데려와서 임금을 시켰으니 그가 바로 철종입니다.


철종 13년에 열린 어전회의에서 안동김씨의 참석자 명단을 옮겨 볼까요!

영의정 김좌근

영돈영부사 김문근

판중추부사 김홍근

판돈영부사 김병기

이조판서 김병교

병조판서 김병학

형조판서 김병주

지중추부사 김병국

대사헌 김병필

대사성 김병시

이들은 부자지간

숙질간

사촌 간들이라 합니다.


이런 판에 임금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꾼을 거슬러 올라가면 병자호란 때 척화파의 거두 김상헌에 닿는데요

이들은 조선 최고의 로열패밀리이겠죠!


할아버지 김상헌은 훌륭했는데 세도를 누린 그의 후손들은 임금을 에워싸고 국정을 지 맘대로 농단한 싸라기들입니다.


역사는 소름이 돋을 만큼

반전과

반복의 연속인데요


김구 선생의 계보도 올라가 보면 인조반정의 주역 김자점이 있고

더 올라가면 단종복위를 고자질한 김질이고요


조선 최고의 실천적 성리학자 남명 조식 선생님의 후손은 며칠 전에 형조판서가 된 웃기는 남자 조입니다.


암튼

안동김씨의 세도에 임금과 백성은 물론이요 종친들도 살얼음을 걷듯 숨도 크게 못 쉴 지경이니

이하응도 마찬가지였겠죠.


미치광이 노릇을 해가며 중국 한나라의 한신이 건달의 바짓가랑이를 기면서 과하지욕의 수모를 참아내듯 이하응도 초상집 개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파락호로 살고 있을 때입니다.


풍수지리를 신봉하던 그는 조선을 주유하며 세상을 떠돌다가 당대의 명풍수 정만인을 만납니다.


풍수는 흥선의 부탁을 받고 전국을 두루 살펴본 후

이곳 가야산 아래의 가야사라는 절을 지목하며 2대에 걸쳐서 임금이 나오는 명당이라 일러 줍니다.


하여

흥선은 절을 불살라 버리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1846년도 일이군요.


Wow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봐도 명당입디다

지금껏 본 산소 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이장 7년 후 차남 명복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12살에 등극하여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 간 고종입니다.

어찌하였건 흥선은 묘를 이장한 후 고종과 순종의 두 임금을 배출했으니 결과적으로는 풍수의 말이 맞았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2년 후 독일인이 남연군묘를 도굴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도굴은 실패했지만 흥선의 입장으로 보면 병인양요의 후유증도 있고 아버지의 묘를 파헤친 서양놈들에게 많은 반감이 쌓였겠죠.


이것은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으로 이어져서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국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만

그의 개혁적인 정책과 추진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역대의 개혁정치가를 보면

조광조

정조대왕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있는데요

아마도 대원군의 개혁이 가장 빛을 발한게 아닐까!


1. 선조대에서 만들어진 붕당정치가 숙종대의 환국정치를 그쳐

철종대의 세도정치로 피날레를 장식한 280여 년의 패거리 정치를 깔끔하게 잠재웠습니다.


2. "백성을 괴롭히는 자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나는 용서치 않겠다" 며 사액서원 47만 남기고 모조리 철폐해 버렸습니다.


3. 정치와 군사를 주무르던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부활시켰으며


4. 문란한 정전 군정 환곡의 조세정책을 바로 잡았고


5.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경복궁도 대원군이 복원한 것입니다.



요즈음 개혁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는 조국 교수가 수많은 의혹과 거짓말과 이중성을 외면한 채 법무부 장관에 올랐는데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땅의 정의는 사라졌다

이 땅의 정체성은 소멸됐다

도덕도 무너지고

양심도 무너지고

상식도 무너지고

법도도 무너졌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야 아니라고 펄쩍 뛰겠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패러다임이 바뀐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조국이 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변은 단 하나 사법 개혁입니다.


과연 조국이 대원군처럼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이미

청산의 대상이 되어버린 진보귀족!


그들이 개혁을 하겠노라 난리를 치고 있으니 대원위대감이 지하에서 얼마나 우스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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