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좋아 숲에서 논다

by Chong Sook Lee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먹고 자고 놀며 보내는 시간이 왜 그리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세월이 가는데 그냥 보낸다. 잡지도 못하고 잡히지도 않는 세월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앞으로만 간다. 어제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늘이 어제라는 시간이 되고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는데 아직도 인생을 잘 모른다. 세월이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왔는데 앞으로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모른다. 가자는 대로 가다가 멈추는 곳에서 삶은 끝이 난다.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하루빨리 정년퇴직을 하고 자유롭게 세계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퇴직을 하니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고 할 일은 없어졌다.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했는데 시간이 많다 보니 매사에 흥미가 없어졌다. 하루는 동네에 있는 체육관을 걸어서 가보니 수영장이 있고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있어 심심한데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 달치 회원권을 샀다. 수영을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물에서 하는 운동반에 들어가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식구들 다 나간 시간에 와서 운동을 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건전하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다녔다. 노인들이 많고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아 듣고만 있어도 재미있어서 수영 가는 시간을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고 남편도 합류해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서 회원권을 샀다. 빌딩을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실내가 밝고 깨끗하고 모든 것이 새 거라서 기분 좋게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정해서 기계로 운동도 하고 수영도 하며 스팀 룸이나 뜨거운 물에 들어가 놀았다. 날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못하던 수영도 배우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친분도 생겨 서로 인사하며 지내게 되었다. 남들은 퇴직을 하고 바뀐 생활로 우울증에 걸리거나 넘쳐나는 시간을 어찌할 줄 몰라 힘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행히 적응을 잘하고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식사를 하고 운동을 다녀오면 점심시간이 된다. 점심을 먹고 나서 피곤해서 눕거나 낮잠을 자면서 어영부영 오후를 보내고 하루가 간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 드라마나 영화를 한두 개 보다 보면 저녁이 되어 자는 것이 하루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며 즐겨 다니던 체육관을 그만두었다. 전염병으로 세상이 문을 닫아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가까운 곳에 있는 여러 개의 숲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다른 숲으로 가서 한 바퀴씩 돌고 오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봄이면 새싹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여름에는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오색 찬란한 단풍이 들고 열매를 맺는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알몸이 된 나무 위에 겨울이 찾아와 눈이 내리고 숲에 하얀 눈이 쌓이면 세상은 하얀 담요를 덮고 있다. 봄의 아름다움과 여름의 풍요로움이 눈부신 가을을 만들고 숲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도 산책을 하며 자연과 대화를 하면 숲은 조용히 응답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수영장을 다니며 운동을 했을 텐데 코로나 덕분에 숲을 찾았다. 숲에는 삶이 있고,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가까이 갈수록 사랑스럽고 매 순간 설레는 숲을 찾으며 산다.


여행을 가는 것도 좋고 친구들과 골프를 치는 것도 좋은데 나는 숲이 좋다.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예쁘고 귀엽다. 아무것도 없던 숲이 봄을 맞고 난리가 났다. 여기저기 새싹이 나고 하루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순서를 기다려 하나둘 나오는 모든 생명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사람들에게 밟히면서도 죽지 않고 피어나는 풀들이 봐달라고 삐죽삐죽 나와서 바람 따라 손을 흔든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숲에 사는 나무나 풀도 다 다르다. 피었다 지는 시간도 다르고 크기도 굵기도 다 다른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듯이 그들도 열심히 산다.


낙엽 쌓인 숲에서 파란 옷을 입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며 살았다고 자랑한다. 앞다투며 나오다가 때가 되면 꽃을 피고 씨를 맺고 말없이 땅에 눕는다. 자연을 따라 살고 자연에 순종하며 다른 날을 기약하며 떠나는 모습이 인생살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숲이 있어 너무 좋다.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걱정할 필요도 없이 아무 때나 찾아가면 만나는 자연이 있어 외롭지 않다.

시기나 질투가 없고 경쟁과 싸움이 없어 좋다. 흐르는 물을 따라 걷다가 하늘 한번 쳐다보면 세상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진다. 만나서 즐겁고 며칠 안 보면 그리운 친구 같은 숲에서 논다. 오르고 내려가고 구비구비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온몸은 환희가 넘쳐난다. 숲은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희망을 준다. 숲이 있고 내가 있고 세상이 있어 행복하다. 코로나로 닫혔던 세상은 다시 열렸는데 나는 숲이 좋아 숲에서 논다.


(그림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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