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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n 16. 2022

비 오는 날의 나의 하루



밤새 온 비가 아직도 계속 온다. 하늘이 구멍이 뚫렸는지 계속 온다. 올해 들어 한 번도 비가 시원하게 오지 않아 가물었는데 이번 비로 해갈이 되는 듯하여 안심이다.  캘거리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긴급상황을 선포했다가 해제 되었다고 하는데 해마다 비가 안 오면 너무 안 오고, 오면 너무 와서 걱정이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할 말은 없지만 적당히 와주면 좋을 텐데 그것도 나의 욕심이다. 물을 마신 자연은 완벽한 초록의 향연을 벌이며 바람 따라 춤을 춘다. 창밖으로 비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하루 종일 오는 비로 지붕에서 물이 넘쳐나는 것이 보인다. 비가 많은 6월 달에 지붕 끝에 붙어있는 물받이에  흙이나 나뭇잎이 쌓여 있어 물이 넘치는 경우가 있어 며칠 전에 깨끗이 청소를 했는데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서 넘친다.


아무래도 큰 나뭇잎이 물 내려가는 구멍을 막았을 것 같아서 남편은 부리나케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사다리를 지붕에 갖다 댄다. 남편이 사다리에 올라가면 나는 아래에서 사다리를 붙잡고 있으면 남편이 물받이를 청소한다. 남편이 올라가 보았더니 집 앞에 있는 전나무에서 떨어진 바늘들이 모여 구멍을 막아서 물이 내려가는 속도를 늦추게 하였단다. 남편이 손가락을 집어넣어 찌꺼기를 꺼내고 나니 물이 시원하게 잘 내려간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날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평소에 자주 청소해 주는데 이번에는 바람이 더 많이 불어서 나무에서 바늘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그래도 구멍 안이 막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안전하게 지나간다.


여전히 비가 온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있고 바람은 조금씩 잔다. 비가 오니까 기온이 뚝 떨어져서 집안이 추워 온도를 올려놓는다. 한창 무더위에 힘들어할 한여름에 춥다니 어이가 없다. 이렇게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일상을 벗어나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다. 회원권을 사서 매일매일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비가 오면 너무 좋아한다. 골프를 좋아하고 치는 것은 좋지만 피곤하고 할 일이 있어도 멤버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쳐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러다 보면 피곤해도 나가야 하고 집안일을 미루고 나가게 된다. 골프를 치고 집에 오면 만사가 귀찮아서 할 일을 미루며 살게 되는데 나중에 모았다 한꺼번에 하면 되지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그동안 하지 못한 일들을 하며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매일매일 한다면 힘들 것 같다. 나 역시 거의 매일 걷기 운동으로 산책을 하는데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할 일이 있지만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아무것도 안 한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아서 안 하고 날씨가 나쁘면 날씨 핑계로 안 한다. 이렇게 세월만 까먹다가 언제 밀린 일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 밥을 먹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뭉기적거렸더니  온몸이 근질근질해서 바람이나 쐬고 들어 오려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바람만 조금 불고 비는 그쳐서 장을 보러 나가서 이것저것 사 가지고 돈만 잔뜩 쓰고 왔다.


 나가면 돈을 쓰는 것을 알지만 안 나가고 안 쓸 수는 없는 것이 세상사다. 꼭 필요한 물건이 없는데도 나가서 구경하다 보면 이것저것 사게 된다. 이제는 가지고 있는 것도 버려야 하는데 나가서 산뜻한 신제품을 보면 사고 싶어 진다. 살림이 넘치고, 있을 것 다 있고, 안 쓰고 있는 물건이 많아도 새로운 물건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면 한두 번 쓰고 말 것인데 사 가지고 와서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든다. 지구를 생각하면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여전히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몇 번 쓰다 버린다. 나쁜 것을 알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다. 언젠가는 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지만 지금 당장 예쁘고 보기 좋아 사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텃밭은 초록으로 푸르게 살아 움직이며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이 이번 비로 인해 부쩍 자랐다. 아직 따먹을 만큼 자라지 않았지만 보고 있으니 좋다. 비가 온 틈을 타서 잡초도 덩달아 신나게 자라서 먹는 것인지 뽑아야 할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대충 풀을 뽑아준다. 못 먹는 잡초는 어찌 그리 잘 자라는지 어디든 조그마한 땅 조각만 있으면 막무가내로 자란다. 얼마 전 친구가 고추 모종을 가져다주었는데 얼어 죽어 속상해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비 오는 날 모종을 심으면 잘 자란다고 다시 고추 모종과 근대 모종을 가져다주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여러 가지 모종을 주며 우리를 챙겨주는 그 친구가 너무 고맙다.


남편이 밭에 구멍을 파고 심은 모종이 꼿꼿이 서있다. 고추가 열리면 고추장에 찍어먹고  근대로 된장국을 끓여 먹을 생각을 하니 좋다. 비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겠다는 오늘도 여전히 무언가를 하며 하루가 간다. 살아있기에 움직이고 그러다 보면 세월도 가고 비 오는 날의 나의 하루도 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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