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정든 나의 집

by Chong Sook Lee



여름인데도 비가 매일 와서 여름 같지 않다. 올해 들어서 반팔은 한두 번 입었을 뿐 긴 옷을 입고 산다. 고국의 폭염 소식을 들으며 한국에 사시는 모든 분들이 이곳으로 휴가를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기료가 너무 비싸서 에어컨을 틀지 못하고 선풍기를 켜고 산다 는 말을 들었다. 44년을 넘게 이곳에서 사는 동안 여름이 덥지 않아 에어컨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기후변화로 작년에 폭염이 한동안 계속되어 에어컨이 품절이 되었는데 올해는 다시 추워 필요 없다.


여름에는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시원한 지하실이 있기 때문에 더운 날은 지하실로 내려간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하실이 있어 더위도 추위도 견딜 수 있다. 특히나 겨울이 긴 이곳은 지하실에 벽난로가 있기 때문에 날씨가 춥고 온도가 내려가면 당연히 벽난로에 불을 피우며 낭만을 즐긴다. 장작을 때고 불명에 빠지기도 하고, 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밤을 구워 먹는 맛이 쏠쏠하다.


요즘 새로 짓는 집은 가스로 된 벽난로라 보기에 예쁘고 따뜻하지만 나무 타는 구수한 냄새는 없다. 가을이 깊어갈 때 벽난로에 장작을 넣어 불을 피고 불타는 모습을 보면 온갖 생각이 난다.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나는 추억의 공간이다. 한겨울 밖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을 때 불 앞에 앉아 있으면 추위를 잊게 해 준다.


이 집에 이사 온 해에 처음 맞은 겨울에 벽난로에 장작을 펴 놓고 세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 굴뚝으로 연기 나가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별것 아닌 것에 희망하고 작은 것에 실망한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각자의 짝을 찾아 가족을 이루고 이제는 남편과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둘이 살기에는 너무 크지만 아이들이 다 모일 때는 이 큰집도 꽉 찬다.


뜰이 넓어 손주들이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노는 것을 보면 행복하다.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만나고 며칠씩 머물다 갈 수 있어 너무 좋다. 뜰이 넓어서 여름에는 잔디를 깎기 힘들어하고 겨울에는 눈을 치우기 힘들어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작은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견딜만하다. 어느 날 더 이상 할 수 없으면 사람을 시켜서 하더라도 아이들이 와서 지내는 것을 보며 이 집에 계속 살고 싶다.


처음에는 몇 년 살다가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는데 살다 보니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고 살수록 정이 든다. 병원, 은행, 학교를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가까이 있어 아주 편리하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전문의 빌딩도 있고 성당도 있다. 나이 들수록 운전하고 멀리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인데 치과나 의사 그리고 미장원과 슈퍼도 가까이 있어 필요하면 아무 때나 갈 수 있어 좋다.


그 외에 더없이 좋은 것은 커다란 공원이 있는 것이다. 사시사철 잘 정비되어 있어 늘 깨끗하고 조용하다. 넓은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운동을 하고 특별한 날은 기념식을 하며 불꽃놀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7월 1일 캐나다 생일날은 거대한 밴드가 와서 노래를 하고 사람들은 소풍 가듯 점심과 간식을 먹고 음악과 춤을 즐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날이기 때문에 많은 장사들도 모여들고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긴다.


겨울에는 높고 깊은 언덕에서 많은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며 추위를 이기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힌다. 공원에는 새들이 많고 오리들은 호수에서 논다. 또한 공원 주위에 요양원과 쇼핑센터가 있고 여러 가지 식당과 필수품을 파는 곳도 여러 군데 있어서 아주 편리하다. 올해로 33년을 살고 있는데도 싫증이 안 난다.


올해는 개나리가 꽃 한 송이도 피지 않고 이파리만 무성했는데 어제저녁에 산책을 나가려고 앞뜰에 나가 보았더니 개나리가 노란 꽃을 두 송이 피었다. 옆에 있는 꽃이 빨갛게 꽃을 피우니 덩달아 개나리도 꽃이 피고 싶었나 보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운다. 가지 하나에 꽃들은 한꺼번에 피지 않는다.


저마다의 차례를 기다리고 순서가 되면 하나둘씩 피어난다. 옆에 있는 꽃이 피어나도 시기 질투하지 않고 바라보며 애썼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를 어루만진다.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는 인간들과 닮았다. 혼자 피었다고 잘난 체하지 않고 예쁘다고 우쭐대지 않는다. 외로워하지 않고 심술을 부리지 않는 꽃들이 저마다 피고 진다.


뒤뜰에는 데이지가 피어 잔치를 하고 텃밭에는 야채들이 살림을 한다. 나무가 많아 새들이 서로를 품어 주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은 춤을 춘다. 자연은 자연대로 최선을 다하고 나는 자연이 주는 풍요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같이 있어서 좋은 조화로움으로 서로를 기대고 의지하며 서로에게 감사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더 좋은 집도 많이 있지만 내가 사는 내 집이 최고 좋다. 새들이 놀다가 쉬어가고 토끼가 편안하게 낮잠을 잔다. 아침에는 새소리로 잠이 깨고 나무 그늘에서 그네에 앉아서 흔들거리고 해먹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지상천국이 따로 없다. 때가 되면 텃밭에 자라는 채소를 따다가 밥을 해 먹고 편안히 잠자는 정든 나의 집이다.


7월에 핀 개나리꽃(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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