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이 꽃길이었다

by Chong Sook Lee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하늘을 본다. 지나간 날들이 하나둘 생각난다. 살아가면서 잊히지 않는 게 몇 가지 있다. 결혼하던 날, 첫아기를 임신하고 입덧을 하던 일 그리고 이민오 던 날과 첫아기 낳은 날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결혼을 하고 피로연을 하고 폐백을 하고 신혼여행 갔던 날이 44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하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길이 막히고 차가 밀려 신부가 결혼식을 하는 성당에 30분을 지각하여 신랑이 놀림을 당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다. 많은 친구들과 하객들과 집안 식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끝내고 집안 어른들께 여러 번의 절을 하며 폐백을 마치고 신랑의 손을 잡고 공항으로 뛰어가던 남편과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결혼한 후에 남들은 허니문 베이비가 생겨 축하받고 하는데 1년이 넘어도 아기가 생기지 않자 시어머니는 어쩐 일이냐고 하셔서 친정엄마 손을 잡고 산부인과를 찾았던 일도 있었다. 52kg이던 몸무게가 44kg까지 내려가서 그야말로 쌩 갈비가 되었는데 임신이 되었다.


입덧을 하나보다 했는데 임신 7개월 때까지 멈추지 않아 고생을 했다. 남편이 냇가에서 손으로 붕어를 잡아와서 국수와 함께 끓인 붕어 탕을 먹으면 괜찮았고, 평소에 조기 찜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는 친정엄마가 조기찜을 해다 주셔서 입덧을 진정시키곤 했다.


만삭이 되어 이민을 오던 날, 비행기 안에서 조산을 하게 될까 봐 남편의 친한 친구인 군의관에게 주사를 맞으며 도착하던 날, 철이 없어 험난한 이민 생활에 대해 걱정조차 하지 않고 24일 만에 큰 아이를 낳았다. 밤새 통증에 시달리고 아침에 신호가 와서 병원에 가서 몇 시간을 고생하다가 지구가 2번 돌으며 아기를 낳았다.


고통은 잊고 이국땅에서 엄마가 되어 태어난 아기를 보며 살았다. 연이어 둘째, 셋째가 연년생으로 태어나 6년을 육아하며 지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들어가던 날, 나도 영어학교에 영어를 배우러 나갔다. 그야말로 화려한 외출을 하였다.


아이들로 인해서 학교도 못 다니고 일도 못 다녔는데 영어를 배우면 돈도 벌 수 있기에 열심히 다녔다. 학교에 다니며 시 민권도 따고 이민생활에 조금씩 자신이 붙어갔다.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살았는데 영어로 직업을 잡아 돈을 벌며 외국인들과 재미있게 소통하며 살기 시작했다.


빵집에서 빵도 만들고 빵도 팔고 손님 들과 소통이 가능해지고 대형 백화점과 전자화사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열심히 다녔다. 나라에서 국비로 가르치는 간호학교에 다니고 병원과 요양원에서 일을 하고 남편도 열심히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잘 자랐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 친구가 운영하던 식당을 인수받아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 운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던 남편과 나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며 하루하루 살았다. 22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양식당을 운영하면서 여러 번의 힘든 시간이 왔지만 고비를 잘 넘기고 우리 식당을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식당을 팔고 5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일하느라고, 돈 버느라고 하지 못하던 것을 자유롭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영을 다니고 산책을 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산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행을 다니며 매일 산책을 하고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기고 산다.


남편은 한인 노인회 골프회 회원이 되어 취미로 골프를 치며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급할 것도 없고 특별히 해야 할 것도 없다. 한평생 뛰어서 앞으로는 천천히 살아도 된다. 뒤뜰에 앉아서 하늘도 보고 날아다니는 새들도 보며 여유롭게 산다.


유명하지도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아도 좋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에 새들이 잠을 깨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하루가 모여 몇십 년이 되어가고 지난 세월보다 앞으로 맞아야 할 시간이 짧아져간다.


지나간 삶을 영원히 기억하며 살 줄 알았는데 이제는 모든 것들이 희미해진다.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면 된다. 아이들이 바쁘게 사는 것을 보면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기에 좋다. 자식들 다 짝 맞추어 아이들 낳고 건강하게 잘 사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여행을 가도 좋고 집에 있어도 좋다. 멀리 가지 않아도 행복하다. 꼭 해야만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가 있다. 편안하게 놀며 친구들과 소통하며 살면 된다. 하루하루를 마지막같이 살고 첫날같이 산다.


어제의 일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어 혼자 웃지만 잊히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며 산다. 파노라마 같은 인생이다. 눈을 감으면 지난 일들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살다가 잘 살았다 하며 떠나면 된다.


삶이 나를 데리고 여기까지 온 것처럼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있다면 나를 데리고 다닐 것이다. 생각하는 몇 가지의 추억이 희미해지는 날, 손을 피고 가면 된다. 하늘을 보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며 산다.


나중에 천국이 낯설지 않으려면 천국처럼 살아야 한다. 무심한 듯 살다 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결혼하고 아기 낳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보니 삶은 그야말로 너무나 아름답다. 생각해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꽃길이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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