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은 소멸되고 카드가 점령하는 세상

by Chong Sook Lee



입추가 지났다고 계절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바람이 뽀송뽀송해지고 더운 기운이 없고 벌써 단풍 든 나무들이 많아져간다. 마가목 나무 열매가 오렌지 색이 되어 꽃같이 매달려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열매는 빨갛게 익어 가고 겨울을 사는 새들의 양식이 된다. 나무들이 점잖게 서 있다. 팔딱이는 청춘의 모습이 없어지고 차분한 중년의 모습이 된 것 같다. 어느새 들꽃도 씨를 맺고 힘없이 서 있는 것을 보면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맨발로 밟으면 촉촉하던 잔디가 말라서 어석거린다. 늙음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계절의 순환을 막을 수 없다.


해마다 폭염이 계속되고 산불과 홍수 그리고 침수로 나라 전체가 혼란스럽다. 나라가 크다 보니 한쪽이 괜찮으면 다른 곳이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구름이 하늘을 다 덮었다. 비가 올듯한데 비는 오지 않고 습하여 끈적거리는데 비가 한바탕 쏟아지면 좋겠다. 참새들이 바쁘게 뜰을 돌아다닌다. 휘리릭 날아왔다가 나뭇가지에 앉고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기를 반복한다. 블루 제이가 무언가를 입에 물고 오더니 앉을자리를 찾는다. 부리로 그것을 깨어 보려고 하는데 잘 깨지지 않자 체념하고 내동댕이 치며 지붕으로 올라가 잠깐 앉아 있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먹고 살기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힘든 것 같다. 먹어 보려고 찾아왔는데 깨지지 않으니 별수 없다. 공원을 걸어가는데 새 한 마리가 콜라 병뚜껑을 발견하고 뚜껑을 뒤집으려고 한참을 애를 쓰는 것을 보았다. 온갖 방법으로 간신히 뒤집더니 뚜껑에 붙어있는 무언가를 찍어먹는다. 어디 가나 누구나 먹고사는 것이 주요 쟁점이다. 호수에서 노는 오리 한 마리가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빼기를 여러 번 한다. 물속에 무언가 먹을거리가 있는지 꽁지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계속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는다. 갑자기 불개미가 떼로 몰려와서 땅 위를 기어 다닌다. 미친 듯이 다니는 개미들도 먹이를 찾기 위해 저러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먹는 것이 무엇이길래 저리 난리를 치는 걸까? 신비로운 먹이 사슬의 원리로 세상은 돌아간다. 크고 작은 생물들이 살기 위하여 먹고 먹힌다. 고속도로에 가다 보면 차에 깔린 동물들이 죽어있다. 이런저런 새들이 차례대로 먹으면 순식간에 자취도 없어진다. 아무리 많은 음식을 만들어도 없어지는 것 보면 입이 무섭다는 말이 맞다. 먹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먹는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먹고사는 방법이 진화한다. 사기 방법이 발달되어 교묘한 수법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조심해도 별 수 없이 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잔인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허술한 틈을 노린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세상이지만 어쩌다 전화가 오면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전화를 받으려다 혹시나 사기꾼인가 하는 생각이 앞서서 주춤한다. 세월이 가면 살기 좋아질 것 같았는데 사기당할까 겁나고, 억울하게 사기를 당한 사람은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눈치를 채고 경찰에 연락을 하여 사기를 미리 막아 변을 당하지 않은 사례도 있어 다행이다. 세상이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조심해도 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엄청난 액수를 잃고 얼이 빠져있는 노인들을 보면 현대문명이 낳은 희생양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기야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노인들만이 아니다.


몇 년 전, 지인 아들이 여행용 차를 사려고 할 때 누군가가 싼 가격에 판다고 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차를 가져다준다기에 돈을 지불했다. 전화를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아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고 차도 오지 않아 우습게 사기를 당한 일이 있었다. 젊고 똑똑한 청년인데 상대를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불신하는 사회가 되어간다. 가짜도 못 믿고 진짜도 못 믿게 되어간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당하는 세상이 아니다. 세상은 인공지능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인공지능이 좌지우지한다.


인건비가 올라가고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가게 주인은 비싼 돈을 들여서 기계를 산다.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고 기계가 하라는 대로 하며 물건을 산다. 기계의 명령에 따라 해야 하기에 정신 바짝 차리며 집중한다. 기계는 기계의 할 일만 하기 때문에 인간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기계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간은 꼼짝 못 하고 두 손을 든다. 기계로 물건을 사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앞 뒤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시대는 갔다. 돈을 내며 캐쉬어와 주고받는 안부도 없어지고 침묵의 시대가 되었다.


대화가 없고 기계만 돌아가는 세상에 사람들은 기계 속에서 산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까 의문이 간다. 언어가 필요 없이 기계가 많아지고 인간이 할 일을 기계가 한다면 인간이 갈 곳이 없어진다. 인간과 인간이 부딪히며 인정을 나누며 살던 때가 좋았는데 역사가 되어간다. 카드가 돈이 되고 화폐는 그림책에 나오는 정도로 가치를 모르게 되어간다. 어쩌다 물건을 사고 현금을 내면 거스름 돈을 계산해야 하는 캐쉬어는 어쩔 줄 모르며 쩔쩔매는 것을 본다. 이제 카드의 세상이 되었다. 카드는 생명줄과 다름이 없어 사람들은 카드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현금이 없어지는 세상은 인정도 없어지는 세상이다. 꼬깃꼬깃한 돈을 쥐어주며 사랑도 함께 주던 시대가 없어져 간다.


(이미지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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