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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닮은 텃밭
by
Chong Sook Lee
Aug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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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루가 열렸다.
특별히 할 일은
하루하루 잘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열심히 살 필요도 없고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다.
하루가 시작되면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부엌으로 내려와 뒷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간다.
동쪽을 향한 정원은
아침부터 눈부신 햇살이 내려 쬔다.
나무들이 밤새 안녕하냐고
손을 흔든다.
매일 봐도 언제나 반가운 나무들이다.
철마다 옷을 갈아입고 잘 자라준다.
남쪽에는 마가목 나무와 밥풀꽃 나무가
서로 기대어 의지하고
사과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있다.
나무들 아래에 작은 텃밭에는
호박, 토마토, 쑥갓과 깻잎, 고추,
그리고 부추와 파가 자란다.
갓은 이미 두 차례를 뽑아 먹었고
상추는 씨를 심었는데 나오지 않았다.
고추는 키가 크지 않지만
꽃
이 몇 개 피어서 고추가 달리고 있어 다행이다.
해마다 재미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데
기대만큼 잘 되지 않을 때는
내년에는 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봄이 되면 또 씨를 뿌린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다.
싫어 싫어하면서도 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하고 산다.
텃밭을 갈아엎고 잔디를 깔면 되지만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피어나는 싹을 보면 너무 예쁘다.
벌레를 무서워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구경하고 따먹는 재미에 해마다 텃밭농사를 진다.
호박꽃은 만발했는데
호두만 한 호박이 하나 열려 있을 뿐
올해는 별 재미를 못 보았다.
잘 자라면 신나는데 안 자라면 걱정이 태산이다.
매일 물을 주며 고맙다 예쁘다 하는데
생각보다 안 자라면 속상하고
걱정을 사서 하는 것 같아 실망한다.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도
수확이 풍성하면 기분 좋은데
평생을 공들이는 자식 농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텃밭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도 한해 살고
다음 해에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 같다.
텃밭에 사는 삶을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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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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