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창문가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소영은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린다. 90살이 넘은 소영은 남편이 떠나고 혼자 살아가기 힘들어 아이들이 차례로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오고 가던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요양원으로 오게 되었다. 먹고 자는 것은 편하지만 혼자 살 때의 자유를 빼앗겼다. 남들 먹을 때 먹어야 하고 남들 잘 때 자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바깥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소영은 점점 우울해지고 말이 없어진다.
자식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손님 같은 존재가 되었다. 소영은 생각한다. 부모 자식은 천륜의 인연인데 한평생 자식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부모의 심정을 자식은 얼마나 알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와 생각하니 부모의 나이가 되고 나니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자식은 또 그들의 자식을 위해 살아가느라 바빠서 부모를 챙기기 어렵다.
이제 세상은 달라져서 자식에게 부모 부양을 원하는 사람도 없고 부모를 부양하려는 자식도 없다. 서로 각자 잘 살아가면 된다. 옛날에는 의례히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사는 것이었는데 서로 피해 안 주고 없는 듯이 사는 것이 최고라 생각한다. 각자 벌어서 쓰고 싶은 대로 쓰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고, 도움 달라고 손 벌리지 않으면 좋은 부모이고 좋은 자식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며 걱정하고 희생하며 살다 보면 늙고 병들어 자식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가 된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가 늙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모는 아파도 안되고 영원히 자식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한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자식도, 부모도 늙어가는 날에 자식은 늙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실감한다.
작아진 부모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릴 때 도움을 받은 기억은 없어지고 힘들고 귀찮은 현실을 원망하며 회피하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어서 귀찮게 하는 부모가 싫어 짜증 내며 거부한다. 답답하고 한심하여 신경질을 부리고 부모는 자식의 눈치를 보게 된다. 부모들은 자신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자식은 부모가 되고 세월 따라 늙은 부모는 자식을 떠난다.
젊을 때부터 소영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기억을 더듬어 천천히 흥얼거려 본다. 바쁜 부모는 돈을 벌어야 먹고살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아이는 아빠와 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빠는 나중에 놀자고 한다. 아이는 '나도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야'라며 아쉬워한다. 아빠는 바쁘게 일하고 아이의 선물로 공을 사다 준다. 아이는 공치기를 같이 하자고 애원하지만 아빠는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고 놀지 못한다. 가면서 언제 우리 다시 만나면 좋은 시간을 갖자고 하며 떠난다. 아이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나중에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되겠다며 서운함을 달랜다. 아이는 혼자 놀며 세월이 흐른다. 아빠는 노인이 되어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이는 바쁜 어른이 되었다. 아빠는 이제 아들에게 같이 놀자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지금은 바빠서 놀지 못한다고 한다. 나중에 바쁘지 않을 때 그때에 놀자고 하며 급하게 나간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아빠를 만나러 오겠다고 해서 아빠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렸다. 아들은 급하게 오더니 차를 빌려 달라며 급하게 차를 가지고 나가면서 나중에 우리 재미있는 시간을 갖자 고 한다. 아빠는 그제야 옛날을 기억한다. 같이 놀자고 조르는 아들을 뒤로하고 돈을 벌기 바빠 아들과 놀지 못하던 때를 생각한다. 그래, 우리 다음에 시간이 되면 같이 놀자던 이야기를 아들이 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아빠는 씁쓸하게 웃는다. 아들은 아빠 같은 사람이 되었고 언젠가 만나면 좋은 시간을 갖자고 하며 떠난다. 노래는 끝나고 삶은 그렇게 허무하게 이어진다.
세월 속에 익어가는 나이를 거슬러 갈 수 없다. 소영의 몸도 마음도 자꾸만 작아진다. 넘치던 자신감도 낮아지고 쉽게 노하며 서운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던 세월은 자식들에게 주고 힘없이 시들어가던 부모의 뒤를 밟는다. 같이 놀자고 하며 매달리는 아이들과 놀지 못하고 앞만 보고 살다 보니 짧아져가는 인생을 만난다. 생로병사의 길을 따라간다. 돈이 많고 적고 권력이 높고 낮음도소용없는 지금, 그리움만 남아 소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길에 인연을 만나고 부모 자식의 인연에 의지하면서 안타까움에 울기도 하고 작은 기쁨에 행복해하며 산다. 바랄수록 실망이 크고 채울수록 커지는 공허감에 소영은 '다 그런 거지' 하며 허허 웃는다. 창밖에는 차들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노래 가사처럼 자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는 소영은 혼자 말한다. '언젠가 만나면 그때 우리 모두 좋은 시간을 갖자'라며하늘을 본다. 하늘도 슬픈지 먹구름이 몰려온다.
서글픈 현실을 안고 사는 소영이의 하루는 길다. 늙은 것이 무슨 죄라고 푸대접을 받는지 모른다. 모르는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구박을 받아야 하는지 모른다. 요양원에서 눈이 빠져라 자식을 기다리는 소영이는 목이 길은 사슴이 된다. 오늘도 아무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고 있다. 그녀는 이제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야 하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밥을 먹으러 오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그녀는 배를 채우러 지팡이를 집고 식당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