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하루를 맞으며 쌓여가는 우정

by Chong Sook Lee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는 날인데 아침부터 비가 온다. 티타임이 9시 반이라서 아침 6시 반에 모두 모여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서양식이다. 치즈 오믈렛과 감자튀김, 보리죽, 소시지, 삶은 계란, 빵, 각종 주스와 과일이 있어 각자 기호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 저녁을 배가 부르게 먹었는데도 자고 일어났더니 배가 고프다. 계란 하나와 토스트 한쪽 그리고 오렌지 주스와 감자튀김과 차 한잔으로 아침을 마무리한다. 비 오는 밖을 내다본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도 갈 준비는 해야 한다. 이곳에 비가 오더라도 이미 티타임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안 오거나 상관없이 일단 가봐야 한다.


갈 준비를 끝내고 밖에 나오니 비가 그치고 구름 속에서 해가 아침인사를 한다. 비가 그쳤다. 미국 국경에 가까운 곳으로 가는 길이 안개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마치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환상적인 풍경이다. 뽀얀 구름이 산의 허리를 감고 춤을 춘다. 주 중이라도 차들이 많아 차도에는 차들이 줄을 지어 나란히 달린다. 오른쪽에는 기암절벽을 이루어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왼쪽에는 바다같이 크고 긴 강이 흐른다. 날씨가 화창하면 더없이 아름답겠지만 구름 낀 그대로의 모습도 멋지다.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해님이 강물을 비춘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눈부신 햇살 속에 찬란하게 빛난다. 금빛 물결이 눈앞에 펼쳐지고 바위산들은 자리를 지키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맞고 보낸다.


과일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농장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포도 농장을 지나간다. 새파란 잎사귀 아래 새까만 포도송이가 당알 당알 알알이 달려있다. 수도 없이 매달려 있는 포도를 보니 당장 차에서 내려가 한송이 떼어서 한입에 넣고 먹고 싶어 군침을 삼킨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과 강을 끼고 시골길을 간다. 낯익은 모습이다. 마치 한국의 시골길을 연상하게 된다. 양옆으로 포도밭이 즐비하게 심어져 있고 빨갛게 익은 자두와 사과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려 있다. 가지런하게 심어진 나무들이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거대한 산 꼭대기에는 별장이 빼곡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정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오르고 내려가며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고 평지를 가다 보니 골프장이 가까워온다. 새들이 떼를 지어 새까맣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포도밭 위로 새들이 몰려다닌다. 농장 주인들은 총을 쏘아 총소리로 새들을 쫓고 새들이 죽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닌다. 인간이 먹으려고 심어놓은 포도를 새들이 망쳐놓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새들의 행패가 나날이 더해간다. 인간과 새들의 전쟁이다. 인간도 새도 먹고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산다. 포도밭에서 쫓겨난 새들이 골프장 입구에서 기회를 기다리며 잔디 위에 앉아있다. 과일농장이 둘려 쌓인 골프장에 벌써 사람들이 와서 골프를 친다.


아침에 비가 와서 골프장은 원 없이 푸르다. 골프를 치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좋다. 남편과 함께 카트를 타고 한 홀씩 넣어가며 가는 길이 좋다. 골프를 잘하고 못하고 관계없다. 푸른 초원을 보니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하나만으로도 좋다. 골프가 잘 쳐지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다. 골프 치는 시간이 보통 4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좋아하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생각하면 비싼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 동안 우리가 즐겁게 살면 된다. 건강하게 하고 싶은 것 하며 살다 보면 그것조차 할 힘이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때까지 즐겁게 살면 된다. 공이 모래에 들어가고 공이 물에 빠져도 웃으며 넘어간다.


공은 가고 싶은 대로 간다. 가라는 곳에는 안 가고, 가서는 안 되는 곳에 공이 떨어져도 할 수 없다. 뱀이 있다고 주의를 주어서 숲이나 골짜기에 공이 떨어지면 공을 찾지 못한다. 바위산이라서 풀이나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 1925년에 건축한 훼어 마운트 뷰 골프장이다. 1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골프를 즐기는 곳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카트를 세워놓고 골프를 치는 모습이 보인다. 18홀을 가는 동안 응원과 격려를 하며 간다. 한번 한번 공을 치고 홀에 넣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골프 안에 인생이 보인다. 안된다고 그만두지 않고 마지막까지 간다.


가다 보면 잘돼서 기분 좋고 안된다 해도 또 기회가 있다. 같이 가는 썸과 함께 앞으로 간다. 다음 홀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를 한다. 우리가 살아온 길과 앞으로 살아갈 길이 골프코스에 보인다. 코스가 어렵다고 돌아서도 안 되고 코스가 쉽다고 건너뛸 수 없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다. 내게 온 모든 것은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간다. 홀이 옆으로 숨어 있어 보이지 않아도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멀리 보인다. 옆으로 가고 아래로 떨어져도 공을 따라간다. 내가 하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다. 남들이 치는 것을 보고 같이 즐거워하고 웃으며 같이 가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 초원을 달리며 하루를 보내는 추억을 만든다. 스트레스도 없고 근심 걱정도 없다. 보여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이대로가 좋다. 골프선수가 아닌 이상 잘하는 사람이나 못하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다. 매일 치는 사람도 안 되는 날이 있고 어쩌다 치는 사람도 잘 되는 날이 있다. 한번 잘된다고 매일 잘되지 않고 잘 안된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함께 걸으며 앞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웃고 농담하는 사이에 어느새 골프를 끝내고 클럽 하우스에서 점심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한참 동안 담소하다 호텔을 향해 간다.


천천히 가며 포도농장, 사과와 자두 복숭아 농장을 지나며 과일을 사고 포도주 공장에 들려서 맛을 보고 포도주도 샀다. 며칠 동안 국물 없는 식사를 해서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 월남 국숫집으로 가서 땀을 흘리며 국수를 먹었더니 좋다. 오늘은 이렇게 왔다 가고 또 하루가 저문다. 멋진 내일을 맞기 위해 잠 속에 빠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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