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노는 가을을 만나고 왔다

by Chong Sook Lee



완벽한 가을 날씨다. 가을을 만나러 평소에 즐겨 찾는 숲으로 간다. 못 본 사이에 멋지게 치장을 하고 반긴다. 울긋불긋 고운 옷을 입고 봐달라고 한다. 옷을 반쯤 벗고 서 있는 나무도 많다. 여름에는 오솔길에 나무와 풀이 너무 우거져서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제는 풀들이 편히 누워있다. 한여름 꼿꼿하게 서 있던 풀이 서로 기대어 파란 하늘을 본다. 자기들의 구역을 지키느라 덤벼 들던 모기도 없어 다닐만하다. 여기저기 빨간 열매가 열려있어 가까이 가서 본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색이 고와 먹어보고 싶다. 빨간 열매는 겨울에 새들의 먹이가 된다. 가다 보니 가지가 꺾였는데 죽지 않고 누워서 가을을 맞는 나무가 보인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생명의 끈이 참으로 끈질기다. 딱따구리가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부리로 구멍을 뻥뻥 뚫어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나무도 있다. 어린 나무들은 어느새 노랗게 물을 들이고 이별을 서두른다.


가뭄으로 목이 마른 계곡은 바닥을 보이고 중간에 누워있는 나무들 때문에 그나마도 흘러가지 못한 채 고여있다. 가고 싶은 데 가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먹은 것이 소화가 안되면 속이 답답한 데 가는 길을 막고 누워 있는 나뭇가지를 원망하지 않고 물줄기를 찾아내어 조금씩 흐른다. 평소에 자주 온 곳이라서 익숙하게 걸어간다. 사시사철 햇볕이 내리쬐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 년 내내 햇볕 한번 구경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가느다란 마가목 나무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하늘 높이 서 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곳은 뱀은 없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너무 좋다. 길을 따라가는 길에 뒤로는 언덕이 감싸주고 앞으로는 나무들이 있고 계곡이 흐르는 곳이 나온다.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고 바람이 잘 통하고 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원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포근하고 편안하여 지구를 떠난 후에도 오고 싶다고 남편과 종종 이야기한다. 마치 고향의 뒷산 같은 곳이다. 이곳은 여러 갈래로 나뉜 숲이다. 가다 보면 동네로 나가는 길이 있어 힘들면 동네 길을 걸을 수 있어 편리하다. 손주들과 자주 오는데 아이들은 쉽게 싫증이 나는지 처음에 걸을 때는 신나게 걷다가 쉽게 지친다.


아이들에 맞추어야 자주 올 수 있어서 아이들이 피곤하다면 동네길로 걷는다. 아이들 말을 존중 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믿고 따르는데 우리도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어야 한다. 오솔길로 계속 걷는다. 숲 속의 힘들었던 여름을 보여준다. 가뭄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라죽은 나무가 있고, 세찬 바람에 가지가 꺾인 채 서 있는 나무도 있다. 숲은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경제가 하락하고 고물가와 고금리로 서민들은 울상이다.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가격이 싼 물건을 사고, 필요 없는 것은 사지 않고, 있는 것을 이용하며 산다. 힘든 고비를 잘 넘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쓰러진 나무도, 건강한 나무도 겨울을 맞는다. 사는 동안 힘든 고비가 누구에게나 있다.


숲 속에는 오르막 길이 있고, 내리막 길이 있고, 좁은 길이 있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게 된다. 때로는 가파른 낭떠러지를 가게 되고 숲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어디가 길인지 찾아 헤매기도 하고, 뜻밖의 동물을 만나기도 한다. 코요테를 여러 번 보았다. 언덕 위에 의젓하게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보았고, 오솔길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코로나로 학생이 없는 학교 빌딩에서 새끼를 낳기도 하고, 숲이 가까운 동네길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야행성이긴 하지만 만나면 섬뜩한다. 지난주에 어떤 사람이 다른 숲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데 멀리서 강아지를 보고 있던 코요테가 갑자기 달려와서 강아지를 공격했는데 견주가 강아지를 안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고 하는 뉴스를 보았다. 그 뒤로 그 사람은 개 목에 쇠뿔 목걸이를 걸어준 것을 보니 겁이 난다. 사람에게는 덤비지 않지만 왠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바람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숲에는 남편과 나의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다 보면 계곡물에서 앉아 노는 오리들이 놀라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는 바람에 우리도 덩달아 놀라기도 하는데 오늘은 오리가 보이지 않는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하며 급하게 지나가지만 한번 놀란 오리는 금방 돌아오지 못하고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우리가 멀리 갈 때까지 기다린다. 생각 없는 동물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들보다 더 똑똑한지 모른다.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 수 있어 멀리 보고, 아주 작은 소리를 들으며 재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에 취해 걸으며 오랜만에 마음이 설렌다. 하늘이 계곡의 품에 안겨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눈부시다. 귀찮다고 집에 있으면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을 만나지 못했을 텐데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가을을 만나고 가는 발길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자연은 늘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나러 갈 수 있어 좋다. 또 다른 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숲을 나온다. 숲에서 노는 가을을 만났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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