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처럼... 우리네 행복도 익어간다

by Chong Sook Lee



아침 바람이 제법 차다. 어제 여름처럼 더워서 걸으면서 땀을 흘렸는데 온기가 밤새 식어버렸다. 왁자지껄 하던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간 학교 운동장은 적막하리 만큼 고요하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걸어본다. 우리 집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올 수 있어 아침 운동 삼아 자주 오는 곳이다. 심심한 갈매기가 하늘을 날고 할 일 없는 까마귀는 잔디 위를 걸어 다닌다. 운동장 끝에 있는 공사장에는 기계들이 오르내리며 새로운 빌딩을 짓고 학교에 지각한 남매가 교실을 향해 뛰어간다. 참으로 평화로운 아침 풍경이다. 전쟁과 자연재해로 울부짖는 세상이지만 이곳은 거리가 멀다. 복잡한 어른들의 세상이 아닌 단순한 아이들의 세상이다.


놀이터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노라니 쉬는 시간 종이 울린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운동장으로 뛰어나온다.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들이 있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나와서 뛰어놀고 배가 고프면 간식거리를 꺼내 먹으며 행복해한다. 욕심이 없고 걱정이 없다.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별로 없어 늘 행복한 아이들을 닮고 싶다. 손바닥 만한 운동장에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이 생각난다. 조회는 방송으로 교실에서 듣고 한 반에 80 여명씩 20반을 넘던 초등학교 시절이라서 기억에 남는 동창이 거의 없다. 이곳 초등학교는 한 반에 25명 정도인데 그것도 너무 많다고 학부모들이 난리들이다. 개개인에게 할당되는 시간이 적다고 인원수를 더 줄이기를 원한다.


먹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나라 아이들도 많은데 인간의 욕심은 어디가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많아진다는데 이곳은 아직 그렇지는 않아 다행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가 힘들어도 인구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은 줄어들고 이민자 수가 늘어간다. 노인 인구는 점점 급증하고 어린이수는 적어지고 있다. 경제가 침체되어 가고 뚜렷한 정책 은 없는 상태에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언젠가는 또 다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전쟁 중에 태어난 우리들 세대는 70을 넘어가고 다음 세대는 아이들을 낳지 않거나 하나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은 많아지고 젊은이들은 감소하는 현실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실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가 끼룩끼룩 인사를 하며 떠난다. 내년 봄에 다시 보자고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든다. 해마다 이맘때쯤 강가에는 길을 떠나는 기러기들의 집합소가 있다. 먼길을 떠나는 그들이 철저한 계획을 세워 차례로 가는 모습은 멋있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놀다가 종소리를 듣고 미련 없이 교실을 향해 달려간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시끌벅적하던 운동장에 다시 조용해졌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몇 있을 뿐 다시 새들의 운동장이 된다. 갈매기는 하늘을 날고 까마귀는 나뭇가지에서 깍깍 대며 목청을 가다듬는다.


그 많던 참새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추수 끝난 벌판에서 밀을 쪼아 먹느라 바쁜가 보다. 텅 빈 운동장 가운데에 놀이터에 바쁘게 놀던 아이들의 발자국이 바람이 불어 지워진다. 작년 여름 어느 날, 갈 곳 없는 노숙자 한쌍이 놀이터에서 자고 갔는데 그들은 지금 보금자리를 찾았는지 궁금하다. 살기 좋은 현대에도 노숙자들은 점점 많아진다. 소비가 소득보다 많으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일은 하기 싫어하고 실업자들은 늘어가는 시대가 되어간다. 하늘은 얄밉도록 파랗고 단풍잎은 화려하게 익어가는데 여기저기에서 참담한 뉴스가 들려온다.


자연처럼 순응하며 살면 좋을 텐데 살인적인 허리케인 소식이 연달아 들린다. 지난주에 캐나다 동부를 망가뜨리더니 미국 프로리다를 짓이겨 놓은 무서운 허리케인이 위력을 보이며 세상을 강타한다. 천문학적인 손실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복구할 수 있는지 막연하다. 자연재해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한숨이 들린다. 그들에게 신의 가호를 기원해본다. 지구 한쪽에서는 물 나리를 겪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며 파괴를 일삼는다. 모두를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데 멈추지 않는다. 지구의 평화는 언제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하고 그런 날이 올까 의구심이 생긴다. 지구 역사이래 하루도 전쟁 없는 날이 없었다. 인류의 욕심과 이기는 점점 커져 가고 희생과 헌신의 뜻이 바래가고 있다.


평화로운 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집으로 향한다. 우리 세 아이들이 뛰어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월은 말없이 흐르는데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가을 하늘은 높아만 간다. 하루하루 익어가는 가을이 너무 짧아 아쉽지만 가지 않으면 봄도 오지 않는다. 햇살이 곱게 내려앉는 잔디를 따라 걷는다. 행복이 별것인가 이런 게 행복이지... 하며 남편의 팔짱을 낀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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